나주로 관한 최씨는 탐진최씨의 생원공 휘준량의 육세손인 부위공 휘 정원을 시조로 삼고, 부위공의 삼남인 진사공 휘 택의 오세손으로 참판공인 휘 번의 삼남 중 장차 형제는 탐진으로 계대하고 있으나 삼남인 증참공 휘 용운을 기일세하여 나주로 분관이적하였다.
시조인 부위공 손자인 금남공 휘 부는 나주출생으로 조선 성종조에 문과에 올라 호당에 들어 양가독서를 한 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관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후손들이 금남공의 출생지인 나주로 분적하여 세계를 면면이 이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충남 청양과 서산 보영 등 명지에서 거주하고 있다.
금남공은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다가 부친상을 듣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 중원 태주에 정박하였다가 반 년 뒤에 본국에 돌아와서 어명으로 '표해록'을 지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최초의 일로써 그의 해박한 문성을 천하에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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