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철학자 농사꾼
상태바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철학자 농사꾼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9.14 09: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만큼만 농사가 된다면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숭아와 포도는 물론이고 고추 수확도 괜찮았습니다. “장마보다는 가뭄이 낮다”라는 옛사람들이 하신 말씀이 거짓이 아닙니다.

올해는 수확기에 비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과일의 당도도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조합원 몇 분은 울상입니다. 받은 주문에 맞추어 따려고 하니 너무 익었고, 봄에 열매를 솎아낼 때 너무 많이 매달리게 해서 익는 것이 늦었습니다. 욕심 없이 자연스럽게 키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잠깐 동안 또 잊었습니다.

대개 우리가 아는 훌륭한 철학자들은 육체 없이 영혼만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내가 아는 철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으라고 싸웠고, 취하도록 와인을 마셨고, 사랑이라면 원없이 했습니다.

지혜는 고급 양복을 입는 일이 드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삶의 의미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느냐에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는 늘 필요하지만 사람인지라 그때그때 필요한 지혜가 다릅니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리 퐁티(Merleau Ponty)는 철학을 ‘근본적 반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삶의 지혜는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짜증과 실망이 나오고, 내가 지금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뜨거운 삶의 숨소리를 내뱉을 때 찾아옵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안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결국 삶이란 것이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듭니다.

농사짓는 일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식물의 상태와 일치하지 않는 자잘한 실수가 있습니다. 농작물과 깊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아주 천천히 생각의 속도를 낮추고 때로는 자신을 멈추고 질문합니다.

선택 기준은 하나입니다. ‘무엇을 할까’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농작물 어떻게 키워야 하나를 늘 질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농작물을 존중하고 스트레스 없이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한없는 자기성찰과 소통입니다. 그 다음은 농작물을 스스로 커가도록 응원하는 것입니다.

농작물이 “나는 당신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도록 눈으로 소통하고 농작물의 여유 속에서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최적의 비법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청신호 2021-09-14 21:29:43
왕초보 농부인지라....
밭고랑은 1m 이상 띄워주고
식물들도 사회적거리두기를 해 주었더니,
농업용 리어카 이용이 좋았으며,
수확량에 목메지 않았는데도
청양고추 10근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땅은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을 주었으니,
올겨울엔 밑거름을 더많이 주어야죠~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