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주자학 창시자 주희 시조 '신안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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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주자학 창시자 주희 시조 '신안주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9.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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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주문공과 그 후손들은 어느 씨족보다 학문을 숭상하고 학문으로 일가를 이룬 뿌리이기 때문에 학문의 표상인 서책을 조제로 작품을 구상하였다. 서책의 3개의 정점은 삼강을 뜻하며, 뒤쪽의 신한주씨의 4각형의기둥과 그 위쪽의 청동 조형물은 수 등 5개의 면은 오행을 나타냈다. 맨위쪽의 청동물의 둥근 모양은 지구를 뜻하며, 사방으로 뻗은 11개의 철침 은 5대양6대주로 신안주씨의 기운과 영광이 음양의 이치에 따라 영원토록 뻗어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신안주씨는 고대중국의 전욱제의 후예로서 주나라를 다스렸던 명문집안이며 현 중국 강서성의 신안을 본관으로 하고 성리학의 창시자인 성현문공 주자 희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안주씨는 주자의 증손인 송 한림원학사 청계공 주잠이 서기1224년 남송으로부터 7명의 한림원학사와 함께 고려에 망명하여 현재의 전남 화순군에 선착하게 된데서 비롯된다. 청계공은 순창, 무주, 진안 등지를 순방하여 서당을 개설하고 성리학을 가르쳐서 조선조 500년간의 사회 문화발전에 근간을 이룩하였다.

아들 여경은 고려 좌승상을 지냈고 손자 열은 문절공의 시호를 받은 명재상으로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주문공의 7세손 인장 정숙공은 예상부서, 인원 문간공은 삼사자윤, 인환 공은 첨의부사의 벼슬에 올랐다.

조선조에서 문과급제로 관직에 등용된 이는 30여명이며 주자학을 전파하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그동안 각지방에 몇 개의 파보가 있었으나 조선조말에 이르러 월산 석면공이 고종황제의 윤허를 얻어 신안주씨로 통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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