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염씨는 삼한공신이고 대사도 벼슬을 한 염형명이 시조이고 관향은 파주이고 단일본이다.
고려국 개국공신인 휘 상과 재상을 역임한 휘 현, 봉성태사까지 오른 시, 효문공 휘 신약, 도첨의중찬을 지낸 시충정공 휘 승익, 좌우정승과 문하시중을 지낸 곡성부원군 시 충경공 매헌 염제신은 중시조이고 명문 거족으로 염문의 위상을 높였다. 공민왕이 친히 그린 충경공의 초상화는 보물1097호로 지정되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충경공의 세 아들 국파공 휘 국보는 서성군, 예문관, 동정공을 역임하고, 휘 흥방은 서성군, 대사성, 예문관, 대제학, 청강공을, 휘 정수도 사헌부, 대사헌, 우문관, 대제학으로 고려국에서 가문의 중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392년 역성혁명으로 조선국이 개국하자 염문의 후손들은 충신불사이군으로 은둔생활로 이어졌지만 임진왜란때 창의하여 공을 세운 휘 걸, 휘 서, 휘 홍립, 휘 말경, 휘 언상장군은 원종공신에 책록되어 있고 한말 항일투쟁에 몸바친 휘 온동 열사도 파주염씨 가문의 후손이다.
한국 사실주의 문단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횡보 휘 상섭도 파주염씨 가문의 자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