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사는 운칠기삼(運七技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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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사는 운칠기삼(運七技三)”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11.04 1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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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 근처 산속 임도(林道)를 따라 걸으면 어제보다 오늘이 다르게 보입니다.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단풍이 어느새 산 중턱에까지 내려왔습니다.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와 곁에 와있습니다. 이맘때 농부들은 막바지 일손이 바빠집니다. 깨 타작이 끝나면 콩 타작을 하고, 서리태 콩 수확이 끝나면 밭에 있는 무와 배추로 김장을 합니다.

올해도 나름대로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복숭아와 포도, 고추는 수확기에 비가 오지 않아서 좋았지만, 대추나 감은 꽃 필 때 추위로 냉해를 입어 신통치 않습니다. 다행히 벼는 작년보다 소출이 조금 늘었습니다.

나 같은 소농도 봄에는 희망도 기대도 갖고 시작하지만 가을 추수철에 생각보다 못하여 실망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고요한 마음, 평화스러운 마음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무심하게 욕심 없이 주어진 대로 만족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문화유산 중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라는 불상이 있습니다. 이 불상이 머금은 잔잔한 미소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삶은 뭉크의 《절규》처럼 극히 우울하고 슬픈 모습인데 《미륵반가사유상》은 이 땅의 수많은 번민과 욕심에서 벗어나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에게 “그 사람 잘 사니?” 묻곤 합니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자식 교육 잘 시켜서 조금이라도 부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잘 산다는 것은 남보다 더 많이 벌고, 남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잘 대접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사는 것이 정말 자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외부적인 것이냐, 아니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마음을 만들어내는 의지를 가졌느냐입니다.

중세시대 철학의 일파로써 노예로 태어났던 에픽테토스(Epictetus)의 스토아 학파(Stoicism)가 있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행복은 욕정으로부터 해방되고 외적인 대상에 의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찾아온다고 합니다.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 한자로 불감부동(不感不動)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야 합니다.

가끔 농부들에게 묻습니다. “농사 질만 합니까?” “밥 세 끼 먹고 맘만 편하면 되지요.” 농사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인력(人力)으로 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어쩌면 신(神)의 영역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편하게 마음 먹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농작물이 생장하는 동안 적절하게 날씨가 도와주면 풍년이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입니다. 그런데 이 기후 변화는 인간이 통제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여 나쁜 일이 일어나더라도 부동심(不動心)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애쓰지 말라”라는 가르침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우리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에 대한 욕망은 지금 당장 버려야 한다”라며 스스로의 자유의지(自由意志)로 감정의 평화를 다스려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보는 모습도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뭉크의 그림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그에 대한 선택은 우리입니다. 인간임을 상실하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노래로 자신만의 희망을 노래하여야 합니다.

농부의 팔자는 운칠기삼(運七技三)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스스로 결단하고 선택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에픽테토스는 말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불행해하거든, 그가 오로지 자기 자신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라.”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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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21-11-05 10:14:21
수십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농부의 딸로 태어나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어릴때 보고 들은것과 유튜브를 통해
쌀만 빼면 대부분 자급자족 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 했는데,
유기농을 고집하다보니 수확량은 적지만,
몸에 좋은 채소들을 먹을수있다는 기쁨으로
더 건강해지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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