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애증의 짝꿍 ‘외눈박이’ 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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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애증의 짝꿍 ‘외눈박이’ 그 소
  •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 승인 2021.11.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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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어릴 적 초등학교 때였나
한쪽 눈이 먼 소를
키우던 때가 가끔 생각난다

늘 도망만 다니던
종일토록 그 놈의 소를 잡으러 다니다가
칠흑같이 깊은 밤이 되도록
찾아 헤매다가
꾸중 들을 생각에
혼날 생각에
풀죽이게 하던
늘 골탕만 먹이던 그 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하고
포기하고 집엘 오면
나보다 먼저 와있던 미운 소
눈을 끔벅이며
이제 오냐? 하던 그 소

나와 하루건너 한 번씩은
숨바꼭질하며
늘 나를 술래로 만들었던
저놈의 소 좀 없었으면
팔아 버렸으면 하고
부러 가시 달린 껄끄런
거친 꼴을 베어다 주어도
참 맛나다 맛나네 하며
되새김질하고
맛나게 먹어대던
허연 거품까지 흘리며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늘 배고파했던 소

한 번은 오미 외갓집 동네
오릿길 멱을 감던
개울까지 도망을 쳐서
죽도록 고생시켜서
뚝방길을 따라오며
꼴을 먹이다가
미워서 증오스러워서
돌멩이를 주어 아프게 했던
그 소는 팔려가면서
음메 음메 하며
한쪽 눈에 왕방울만한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저놈의 소가 없으니
이제는 해방이다
홀가분하였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팔려갈 때 그 울음소리가
측은도 하여 눈물이 났네
하염없이 몇 날 며칠을 울었다네
비어있는 외양간이 허전하여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해질녘이면 한쪽 눈이 먼
배고픈 소가
늘 나를 한껏 골탕먹이며
나를 잡아끌고는
집으로 데려와서
따듯한 저녁밥을 먹여주었던 그 소가
가끔은 나의 먼 조상님이 아니었을까? 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오랜 세월
잊혀지지가 않겠는가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전쟁터에서
을지문덕 살수대첩 때 쯤이었나
아니면 강감찬 장군 호위하던
친위부대의 무장이었을까
전생*에도 화살촉에 눈이 멀었던
그 소가 팔려갈 때
끌려가지 않으려
장정 몇이 끌어도
땡길 수 없었던
끌려가지 않으려 했던 그 소가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엘 오니
그 소가 글쎄 한쪽 눈에서
눈물을 주렁주렁 흘리다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널 보고 갈려고
버텨 보았다는 듯
나를 보고는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
도살장 끌려가듯 펑펑 울면서
나는 괜찮다 괜찮어 하고
끌려간 그 소

 

*전생

불가에서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육도(六道)가 있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선업(先業)을 쌓으면 내세에 선한 세상에서, 악업(惡業)을 쌓으면 내세에 악한 세상에서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전생에 비하여 지금 사는 삶을 현생(現生), 죽은 뒤 새로 받을 삶을 내생(來生)이라 한다. 또한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모두 아울러 삼생(三生)이라고 한다.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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