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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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상념
  •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 승인 2021.11.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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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동숭동 마로니에거리에

샛노랗게 떨어진

은행나무잎이 즐비하다

떨어진 나뭇잎을 쓸며

청소하는 이들의

고역도 심하리라

저 노랗게 단풍 든

잎사귀들이 정부에서

공인된 화폐였다면

길가에 나뭇잎은 거의

보이지 않을 텐데

모두를 쓸어 담으려

난리법석 부지런을 떨 텐데

낙엽들이 오간 데 없어

가을의 거리가 넘 삭막해 지려나

파지를 주워 돈을 바꾸려고

차량이 쌩쌩 달리는 대로에서

손수레를 끌며 목숨을 담보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노년은 애처롭다

그 어느 누구든 부자였거나

부자가 아니었거나

지극히 공평한 인생의 결말은

죽음이라는 비극이겠지만

인생살이를 고단하게

마무리하는 가난한 노인에게

떨어진 나뭇잎이

귀한 화폐였다면

손쉽게 비누와 과자를 사고

손주들 용돈을 주고

구멍가게 밀린 외상값도

갚을 수가 있다면

은행잎 몇 장으로

거리의 포장을 친

무허가 노점에서 허기를 때우고

짜장면 한 그릇을 배불리

사 먹을 수 있다면

가을을 기다리는 노년들이

공원의 벤치에 넘쳐나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으련만

이처럼 풍요로운 상상으로

저 낙엽 한 돈이면

라면을 사고도 남고

단팥빵도 살 텐데

구깃구깃 구겨진 이파리들이

저렇게나 많으니

오늘은 공납금이며

밀린 체납금도 걱정하지 않고

방을 따듯하게 뎁히는

연료도 충분히 사고

올해는 따듯한 겨울을 날 수가 있을꺼나

나무의 유전자 속에

종이의 습성이 들어 있으니

종이돈보다는

낙엽돈은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

이파리 물들기 전에

새파란 돈은 저렴하니

샛노랗게 물든 고액권 은행잎을 기다리느라

“눈이 빠질 뻔했네” 하며

꽃처럼 유유히 낙화하는

한 잎을 주워서는

연극도 보고

기름에 튀기지 않은

버블 호떡도 사 먹고

파지를 줍는 고된 수고스러움보다

온통 공원에서

손쉽게 흔한 낙엽을 주우려

가을의 끝자락이 난리법석이며

아름답게 물들어 갈 테고

인생의 황혼도 풍족하여져

만족의 계절이 주는

구술(口述)을 받아 적으며

온통 가을은 한없이 행복하여 지리

어느 한 구석에 무덤처럼

높이 쌓여가는 단풍잎 들여다보며

지나온 삭풍의 세월 쯤이야

잊고 말 텐데

떨어진 화폐를 주워들어

바람이 흘리는 낙엽돈으로

새로 거금을 주고 구입한

신형 핸드폰으로

손주들에게 전화를 거는 어느 노파

“내일 수능 잘보그래이,

할머니가 공원에서 주운 낙엽으로

수능 끝난 저녁을 한 상 잘 차려 줄꺼고만”

점심에 서울대 의과대 앞에서 주운 단풍잎은

화사하여 붉게 물들어

당신들의 지나온 청춘의 빛깔처럼

정열이 한가득 하였다지

어둠이 막 내리기 시작한

마로니에 공원에서

주운 낙엽은 어제보다

더 노란 고액권이 되어

삶이 지금보다는 윤택해지려나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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