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신라 왕손 김알지 후손 '선산(일선)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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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신라 왕손 김알지 후손 '선산(일선) 김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11.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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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산(山)의 형태를 조형화 했으며, 그 위에 종중의 상징마크를 떠 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善山(一善)金氏의 상징성을 표현했다. 앞면에 오석판으로 종중의 유래가 음각으로 새겨지고 뒷면에는 명판이 새겨진다.
전체적으로 산의 형태를 조형화 했으며, 그 위에 종중의 상징마크를 떠 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선산(일선)의 상징성을 표현했다. 앞면에 오석판으로 종중의 유래가 음각으로 새겨지고 뒷면에는 명판이 새겨진다.

선산(일선) 김씨의 시조는 순충공 선궁이며 고려때 고려 개국벽상공신삼중대광 문하시중으로 일선(선산의 옛 이름) 백(伯)에 봉록을 받게되어 선산(일선)이 관향이 되었다.

시조 순충공의 첫 이름은 선(宣)이었으며 신라 대보공 김알지공의 30세손이며 신라 46대 문성왕의 8세손이며 경순왕의 삼종질인 체의공의 아들로 경북 선산군 해평면 낙산동 부근에서 태어났다. 고려 왕건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려고 일선군(선산)에 머물 때에 신라 김씨 왕손으로 왕건 태조를 도와 15세의 어린 나이에 자원 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니 왕건 태조가 크게 기뻐하여 친히 자기 활을 하사하고 이름을 선궁이라고 내려주었다.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삼한통합익찬공신에 책봉되었으며 고려 정종 원년 서기 945년에 대승(大丞)으로 추증하고 순충이라 시호했다. 공이 말년에 관직을 떠나 고향 선산에 낙향해 터를 닦고 지내면서 군 청의 청사에 대지로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도 비봉산 아래 봉하루 터와 군민이 공의 덕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고 향화를 올렸다는 진민사 터가 있고 선산김씨유허비각이 있어 천년이 지난 지금도 후진들의 교육의 장으로 빛나고 있다. 시조 순충공의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 미석산이며 매년 음력 10월1일에 향사를 지낸다.

그 후 후손들이 번창하여 고려조를 지키려고 충절을 지킨 두 충신인 충개공 김제, 충정공 김주와 조선조의 훌륭한 다섯 선비인 세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문정공 김효정, 성리학맥을 이은 문강공 김숙자, 사림파의 종주로 성종때 형조판서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문충공 김종직, 중종때 좌의정과 우의정을 지낸 문대공 김응기, 명종과 선조때 동인의 영수 김효원과 호조판서 및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해사록”을 남기고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의 스승인 문강공 김세렴을 배출한 집안이다.

18개 종파를 이루어 지구촌 각지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여 훌륭한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산김씨는 백암파, 농암파, 문대공파, 간의공파, 화의군파, 낭장공파, 취수공파, 송천공파, 성암파, 소암파, 곤육재파, 대장군파, 우윤공파, 양양공파, 정조공파, 강호파, 과당공파, 점필재파의 18개 분파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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