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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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겨울나무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11.29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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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나희덕(1966~ )의 시 《11월》입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 11월이 다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단풍잎도 떨어져서 지난밤에 불었던 바람에 날려 길 구석 한 구탱이에서 희미한 햇볕을 쬐며 서로 뭉치고 부비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인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의 회고전이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 생계형 화가였던 그의 작품 중에는 《여인과 裸木》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박수근은 겨울나무인 벌거벗은 나무를 전쟁의 폐허 속에 어렵게 살아가는 가난한 민중들을 생각하고 그 고통을 함께 느끼고 희망을 주려고 그렸습니다. 겨울나무는 푸른 기억을 담은 잎새가 모두 낙엽이 되고, 잎새 떨어진 가지 위에 첫눈을 덮고서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며 서 있습니다.

가을에 열매가 풍성하게 맺혔다고 기뻐하면 그 기쁨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차갑고 힘든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 겨울이 용케도 지나가면 새싹이 돋고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노래하게 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겨울은 우리네 인생에 견주어보면 노년에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꿈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달려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육체는 병들고, 정신은 무력감에 빠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는 보통 상대적인 개념으로 무엇이든 가격을 매깁니다. 인생을 상대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이기적인 인간 군상은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할까, 때로 실망하고 낙담하고 슬퍼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다행히도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인생 자체를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하게 하면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자입니다.

나무는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에 따라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그 자체를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자체가 아름다움입니다.

우리 조합원 한 분은 나무에 정통한 분입니다. 그가 심는 나무는 죽는 법이 없고 잘 자라고 열매도 잘 열렸습니다. 과수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그를 불러 일을 시켰습니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를 많이 열게 할 능력은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하게 할 뿐이다.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가 퍼지기를 원하고,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고, 원래의 흙을 원한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매일 아침 본성인 자기 자신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당신은 흠모할 수 있는 자신으로 살고 있습니까?”

겨울나무를 보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짧고 깊은 생각이 듭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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