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고하여 마친단 말인가?
우선 우리가 만난 인연因緣의 시작을 기억해 고해 보렵니다. 터무니없게도 그대와 내가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은 건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였으며, 처음 만나 먹은 음식은 밀면이라는 부산의 향토 음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변함없이 더불어서 여여如如하게 살아보자며, 또한 부산에서 만난 것을 기념하는 뜻으로 여산이라는 ‘부처님 이름法名’이 지어진 배경입니다.
여산스님!
그 어렵고 힘든 시절 한치의 희망조차도 보이지 않던 나를 스승으로 삼아 불도의 길을 걷겠다고 하였을 때 여러 차례 고사하며 다른 훌륭한 스승을 찾아볼 것을 여러 번 종용했습니다. 머무를 절도 가진 집도 없는 말하자면 집도 절도 없이 헤매고 방황하며 떠돌던 나를 의지 한다는 것은 거지를 상전으로 두려는 어리석은 발상이기에 더욱 그러하였지요.
늦깎이 학인의 길을 걸으려면 책도 사보아야 하고 노트북도 구입해야 하는데, 그러한 기초적인 뒷바라지는 커녕 승복 한 벌 제대로 맞추어 줄 여력도 없는 나였건만 당치도 않게 언감생심 그대와 그렇게 이제는 끊을 수도 없는 끊기지도 않는 연이 맺어진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겨워 그대가 가는 길에 짧은 소회의 글을 몇 구절 읊조려 봅니다.
이 사바세계 화탕의 지옥에서 훨훨 벗어나
열반의 언덕을 향해 가시려는
여산스님 이시여
조계사 마당의 나무들이 이제는 잎을 다 떨구었고
아침이면 새들이 모여들어
이구동성으로 시끌벅적거리고 있는데
완전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재잘거리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주의 할喝 입니까? 덕산의 방棒 입니까?
어느 시공에서 이제 그대와 또다시
생의 진지한 대화가 가능할런지
삶의 시효가 이토록 짧을 줄이야
물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흔적도 없는 허무한 인생살이를 다하고 울지 않는 새처럼
힘겹게 날개짓 하며 허공으로 날아가는 그대여
새들도 모두 떠난 뿌연 하늘처럼
한 치 앞도 어두운 세상에서
떠남과 헤어짐이 어느 누구의 잘못이었겠는가
그저 만남의 시기가 짧게 끝난 것이 못내 서러워
처량한 울음을 우니
천지도 함께 흐느낀다네
이 못난 사람의 넋두리로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까 하여 몇 자를 더 부연敷演하겠습니다.
오랜 역사의 기록인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월명은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서 재를 올리며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냅니다. 이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지전紙錢을 불어서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하자 향가는 이러게 시작합니다.
생사의 길은 여기에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갑니다 하는 말도 다 못하고 가버렸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와 가지고
가는 곳도 모르누나
아~ 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나 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제망매가’라는 향가가 지어진 사연이 이러합니다. 죽은 누이의 영혼을 위로하며 지은 절절한 향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도 어디로 가는지, 언제 가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며, 월명 스님은 언젠가 극락에서 누이를 만날 것이라 믿기에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는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삶을 영위합니다. 형제자매나 친구, 친지와의 영원한 이별이 언제 닥쳐올지 알 수 없으며, 세상에 태어난 이상 떠나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며, 그 슬픈 이별을 담담하게 이겨 내야 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요.
생종하처래 生從何處來
사향하처거 死向何處去
생야일편부운기 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 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 浮雲自體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 生死去來亦如然
어디서 태어나 왔으며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이와 같다네
이 근사한 시구는 나옹 스님의 누님이 나옹에게 염불을 배우고 깨달은 바 있어 읊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함허득통 스님이 원경왕태후의 천도를 위해 설한 법어라고 하기도 하며, 서산대사의 임종게라고도 합니다.여하튼 이분들의 본래 글에 첨삭이 있고 변형은 있었겠지만 더욱 잘 다듬어져 현재는 불가의 의례집인 ‘석문의범’에 영가법문으로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불교 가르침의 기본토대가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인간도 실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며 ‘중연생기衆緣生起’에 의한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의 존재로 인연에 따라 오고가는 것이라지요. 그리하여 불교의 생사관을 구름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산스님!
우리네 삶에서 삶과 죽음은 실체가 없다 하며, 실체가 없는 삶과 죽음이 늘 공존하고 둘이 아니듯, 죽은 그대와 산 나, 더 나아가 이 세상 어느 누구든지 죽음의 순간은 공평하며 비장하고 결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대와 내가 어느때 어느시에 저승의 어느 문전에서 반갑게 다시 만나 덩실덩실 춤을추며 옛이야기 할 날을 손 꼽아 기다리며 이 허접한 이별의 말을 서둘러 마치겠습니다.
탄탄 분향焚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