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까치밥’과 관계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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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까치밥’과 관계의 철학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12.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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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까지 과일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 초겨울이 되어도 나무에 달려있는 게 있습니다. 마치 꽃처럼 서너 개의 감이 나무 맨 꼭대기에 달려있습니다. 어릴 적 그 감을 따려고 죄 없는 감나무 밑동을 두들겨 팬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 나와 혼을 냅니다. 나무 꼭대기에 남아있는 감 몇 개는 네 것이 아니고 까치들의 밥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미물인 까치에게도 배려하는 여유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유태계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그의 대표적 저서 ‘너와 나’에서 한 사람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원인이 ‘나와 너’의 관계가 깨진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화를 통하여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친밀한 소통을 쌓아 나갈 때 진정한 상호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너’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너’를 ‘나’보다 못한 존재로 보면서 ‘너’를 ‘나’의 지배 대상 혹은 소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고 진단합니다.

연말이 되면 결산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사도 이루어집니다. 어떤 조직이든 일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에 따라 평가하여 구성원들을 일렬로 세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목적을 두고 한 가지 척도로 평가하는 것이 어쩐지 뭔가 몰인간적인 느낌이 듭니다.

지역농협 같은 사기업은 일정한 이익을 내야 유지가 가능한 조직입니다. 당기순이익이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실적 속에 조직 구성원을 집어넣고 따지고 볶고 평가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적인 배려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이용하다가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배신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너’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상해를 가하는 것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고유한 기질과 성품, 재능이 있습니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조직의 목표 속에 종속시키려는 욕심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유연한 물처럼 상대방의 기질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여백을 가지고 건강하게 구성원 관계를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까치를 이질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여 ‘까치밥’을 배려하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도 차이를 상극(相克)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조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씨앗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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