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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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 이지수(태국)
  • 승인 2022.01.0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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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109)

저는 태국 방콕에서 온 이지수라고 합니다. 2010년에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 후에 한국에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한국어를 못해서 남편과 영어로 대화해서 문제가 별로 없었는데 시부모와 의사소통이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한국에 살고 있는 태국 친구를 알게 되고 친구가 다문화센터를 알려줬습니다. 그 때부터 다문화세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꾸준히 한국어를 배우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한국어로 자주 대화하니까 한국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한국 생활을 익숙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월드'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다문화센터에 계시는 한국어 선생님께서 한국문화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고 외로움을 극복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기 덕분에 한국 생활을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직장에 다닐 생각이 들어서 무엇을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때 다문화센터가 다문화이해교육 프로그램이 진행하고 있어서 저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문화이해교육 강사부터 시작해봤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태국 문화에 대해서 학생에게 설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학생들이 못 알아들까봐 걱정했는데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서 좋은 경험해봤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병이 들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남편과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제가 며느리 역할을 하는 걸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카페를 운영하는 꿈이 생겨서 제과제빵 학원에 다녀 빵, 케이크, 커피를 만드는 과정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에 다니는 동안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는 목표로 결정했는데 필기시험이 몇 번 떨어져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카페 운영하는 꿈을 접었습니다.

그때 임신 소식에 내 인생에 가장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임신하는 동안 아이가 엄마의 배속에 어떻게 지내는 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되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긴장하고 두렵고 다행히 남편이 곁에 있어서 그 어려운 순간을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낳아준 엄마를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당분간 지냈고 아이와 집에 돌아왔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산후조리원이 있어서 너무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이 엄마로서 역할해야 매일 매일 아이를 잘 키우는 법을 배우면서 아이를 키웠습니다.

행복한 순간에 갑자기 태국에 계신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슬픈 소식이 왔습니다. 제가 엄마를 찾아갔는데 엄마가 의식이 없기 때문에 어디가 아프냐고도 못 물었습니다. 제가 “미안하다”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뒤에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제 엄마가 편안한 곳에 가서 쉰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시기가 되어서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 교육에 대해 이리저리 신경을 써야 아이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를 들어 한참 고민했습니다. 한국부모들은 아이가 성공할 수 있게 유치원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어를 잘못해서 다문화센터에 다녀 한국어를 다시 배웠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순간에 사법통역사 자격증을 따보려고 목표가 생겼습니다.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는 걸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사법통역 업무는 더 어려웠습니다.

첫 번째 제가 통역하는 것은 형사사건 특수상해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구속된 피의자와 접견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인과 같이 교도소에 들어가서 통역하게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처음에 교도소에 들어가는 게 상상하지도 못 했습니다. 영화 장면을 생각이 나서 겁이 났지만 업무 때문에 용기를 내어 잘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교도소에서 통역사 업무는 익숙해졌지만 범죄로 인한 교도소에 사는 게 더 두렵습니다. 처벌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교도소에 살아야 한 모습을 보니까 저는 범죄를 절대 저지르지 않겠다고 합니다.

재판하는 날이 다가오면 피의자처럼 긴장이 되어서 잠이 못 자고 걱정하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법정통역은 정확한 내용과 성실하게 통역해야 아주 중요한 점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역사는 피의자대신 말해야 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법정 안에 분위기는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 느꼈습니다. 판사 앞에서 통역하는 게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통역 일을 하니까 여러 차례 사건, 다양한 사람의 성장을 알게 되어 큰 경험을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 때문에 자신이 모르게 나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호기심 때문에 범죄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위해 많은 돈을 필요해서 깊이 생각을 못 해서 범죄가 되었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들을 보면 불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한국 생활은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기가 죽을 때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살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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