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청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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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도 유감
  •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 승인 2022.02.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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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요즘 충청도가 대세다. 바야흐로 정치권에서는 ‘충청 대망론’이 우세다. 홀대 당한 충청도가 드디어 뭉치기 시작하였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고약한 선동책으로 폄훼했지만 그래도 많은 충청인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충청권의 위상과 역할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한 비중이 있음에도 여전히 영·호남이 우선시되는 정책에 대한 일종의 울체된 감정의 발로이다.

‘충청도 핫바지론’은 ‘충청권 홀대론’, ‘푸대접론’ 등으로 이름을 달리하면서 중앙정부로부터 충청권의 정책적 소외감 내지는 찬밥을 의미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지난 시절에는 ‘멍청도’라는 말로 충청도를 비하했다.

실은 ‘핫바지(솜을 넣은 바지)’는 충청도와는 별로 무관했던 말이었는데, 1995년 6월 13일 제1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천안역 지원유세에 나선 JP가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이른바 ‘충청도 핫바지론’이 등장했다.

DJ의 호남, YS의 영남과 같은 탄탄한 지지 기반이 필요했던 JP가 지역감정 카드를 꺼내들었고, ‘핫바지론’을 선동한 계기로 충청 민심은 급격히 JP를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이제는 대중매체에서조차도 충청도가 득세하는 시절이 되었다. 예전에는 동작이 굼뜨고 말은 어눌하고 느리며 멍청해 보인다거나, ‘아부지 돌 굴러가유~’ 어쩌구 하는 얼토당토 않은 억지 스러운 유머로 충청인을 비하하거나 놀리기 일쑤였으며, 뿐만 아니라 TV드라마에서도 부잣집 단골 식모 역할이나 해대던 충청도였다.

그러나 어느덧 상전벽해가 되어 충청도 출신 정치인, 예술인, 체육인이 각계계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맹활약 중이다. 또한 행정수도 뿐 아니라 국가의 주요 기관도 충청도로 이관하거나 이전계획 중이니 ‘국토 균형발전의 중심’이 되었으며 과히 ‘충청도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충청인의 말과 행동이 본의 아니게 유머의 소재였다면, 이제는 충청도식 화법인 직설화법이 아닌 에둘러 한참을 둘러대는 점잖은(?) 표현에서 유머의 소재를 찾곤 한다. 말하자면 한마디로 충청도 방언의 큰 특색은 곧 ‘즉문즉답’의 재미없고 밋밋한 표현보다는 ‘은유적 직답’에 가까우며 ‘축약적’이며 ‘해학적’일 뿐아니라 능청스러움이라 하겠다.

건조하고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에둘러서, 은유와 재치가 몸에 밴 사람 가운데 충청인이 많은 이유는 체면과 격식을 따지는 ‘양반기질의 농축’이 그 이유라 하겠다. 양반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허울뿐인 겉치레가 위선으로 보일지언정 능청스럽게라도 겉치장과 겉치레를 해야 직성이 풀리며 이는 곧 양반인 지배 계층의 짙은 속내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대중에게 널리 익숙한 개그맨 대부분이 충청도 출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체면과 격식을 중요시 하는 ‘양반의 고장’, ‘청풍명월’, ‘충절의 고장’, ‘점잖은 동네’에서 넘어지고, 엎어지거나, 촐랑대며, 혹은 바보스러운 연기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 많다는 통계를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다.

코미디에서는 바보스럽지만, 현실에서는 ‘의뭉한 능청도’이다. 또한 심도 있게 분석을 해보자면, 충청도 사람들의 특징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충청도 사람이 행동은 ‘느림의 대명사’이지만, 결국 실리에 밝다는 것이다.

두령이 되어 온갖 책무를 져야 하는 무거운 길보다는 권한은 막강하고 차기를 노리는 이인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왕왕 있어 왔다. 이는 경우와 방법론을 정확히 계산하려는 속내를 안고 있는 이유에서 이기도 하다. 현재의 눈앞에 이익보다 충심으로 상전을 모시고 현재의 부족함을 보완한 완벽을 이루려는 태도를 견지하다 보니 만년 이인자가 청풍명월이었다는 혹평가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작이 굼뜨니 무조건 충청도라 여기는 추세였기도 하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선입견이다. 충청인은 느리고 길게 말을 늘여 웃음꺼리를 자아내곤 하지만, 이는 생각을 진중하게 하려는 말투이고, 느리고 어눌해 보이는 충청도 말투에는 명확한 계산이 담겨있는 것이며, 여유와 자신감이 내재된 표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양반의 웃음’이라는 프로를 기획했던 대전문화방송 전영식 PD는 ‘느림’과 ‘느긋함’이 충청도 웃음의 근원이라고 했다. 충청도의 웃음을 진정한 웃음, ‘양반의 웃음’이라고 표현한 것이며, 이러한 충청도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웃음꾼이 많은 이유이다.

영화 친구의 유명한 대사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충청도식으로 하면 그 은근한 표현에 웃음이 터진다. “으이그 그만 혀~, 배 터져 죽겄어~” 충청도만이 주는 능청스러운 해학의 결정체는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아니, 비방을 한다고 하여도 경직성을 멀리하고 기품이 있다고 한다.

“냅둬유~, 애는 착혀유~” 이는 참 심한 충청도식 욕이다. 한마디로 ‘바보 같은 놈’이라는 뜻이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재촉을 하면 돌아오는 말이 있으니, “그러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랫슈”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 버전도 있으니, “이제는 지가 지겹기두 하겄쥬”, “그려서 가는규”로 시작해 “가슴 아프다 말겄지유. 어쩌것슈, 그리유 잘 먹고 잘 살아유”로 끝난다.

“몇번 찍으셨어요?”
“될 사람 찍었겠쥬”

선거 여론조사가 가장 힘든 곳이 충청도란다. 충청인이 3월 대선에서 어느 누구에게 표에 찍을지?

청주에 사는 고향의 부랄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대권을 거머쥐는겨?”
“뭘 걱정하고 그랴, 되는 놈이 우리 편이지”

참 명쾌하다.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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