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날 새벽, 무슨 연유인지 한 죄수가 목을 맵니다. 독일 베른하르트 슐링크(1944~)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여자 죄수 한나 슈미츠는 그렇게 삶을 마감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말,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열다섯 살 한 소년이 구토 증세를 보이고 중년의 한나가 그를 도와줍니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한나는 책을 읽어 달라고 요구하고 소년 미하엘은 책을 읽어주는 패턴으로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한나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9년이 지나서 유대인 학살 관련 재판장입니다. 당시 법대생이던 미하엘은 학회 활동으로 재판 과정에 참석하고, 거기서 한나에 관한 결정적인 비밀을 압니다.

한나는 전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었습니다. 그것은 한나에게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절대 비밀이며 자존심이었습니다. 미하엘은 안쓰러운 마음에 책 내용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보냅니다.

그런데 미하엘은 4년이 지나서 어린아이같은 필체로 감옥에 있는 한나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그녀가 고통스러운 문맹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미하엘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테이프만 계속 보내고 글로 쓴 답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서신은 한나가 문맹이었다는 수치심을 영원히 덮어 주었을 선물되었을 일이지만······. 한나는 법정에서도 느끼지 못한 깊은 절망을 맛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기 싫어하는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수치심이 맘속 깊이 가라앉아 있을 때는 그래도 감당 가능하지만, 한번 표출되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 합니다.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쓰는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오로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의식해서는 자유로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한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억울한 감옥생활을 연장했으며, 문맹을 벗어나기 위해 수없이 테이프를 들으면서 글자를 익혔습니다.

경영에서 많은 리더들은 완벽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 하고, 부하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합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리더와 직원들이 실수할 수도 있고, 결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정신적으로나 경영관리면에서 건강해집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실수를 최소화하고 결점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완벽만 추구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지역농협에서 금융 대출이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실수가 가능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두려워하여 생산성과 창의력에 있어서 장기적인 손실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조그만 틈이 있고,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신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세상살이의 매력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bsn@bsnews.kr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