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호박
상태바
늙은호박
  •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 승인 2022.04.11 1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풍경소리]

봄이 오면 부지런한 울아부지
늘 들에서 사신다
내 땅이 빈약하면
화전민 처럼 손바닥 만한 빈틈 보이면
그 어디든 개천의 뚝 에도
양지바른 곳 이면
내땅 남의땅 가리지 않고
똥을 푸어다가 흙과 비례하여
잘 섞어서 거름하여서
작년에 말려둔 
하얀 호박씨를 정성껏 묻어둔다
그리하여 가을이 되면
줄기줄기에 빛깔 고운 호박덩어리
주렁주렁이다
서리내려 더욱 달달해진
밑천 보다 본전을 훨씬 넘어
노르스름하게 잘 익은 
조선호박이
수박 두개보다 더 커진
큰 애기 엉덩이처럼
탄력있는
조선의 가을 밤 하늘의
둥근 달님처럼
커다란 달항아리 처럼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한 잘 익은
늙은 호박이 헛간에 가득이다
남는 농사였다
호박풍년이다
연약하여 보들보들 일찍 따낸
애호박들은 잘게 썰어
서늘한 가을 햍볕에 말려
호박 고지를 만들어서
바짝 말리어지면
두부를 숭숭 썰어 넣은 시큼한 김치국에도
돼지고기 넣고 자글자글 끓인 김치 찌게로 팔팔 끓이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이면 
호박속살인 오렌지색의 호박죽을
끓여서 흑설탕 넣은 달디단 호박죽을 정성껏 끓여서는
새끼들을 거둬 먹이신 엄마
애 호박이든 늙은 호박이든
한 겨울 일용한 양식이었던
호박덩어리
봄이면 수 십 군데 구덩이에
거름 버무려
호박을 심고 계실 아버지
궁시렁 궁시렁 하며
뒤 따르는 엄마
올 가을엔 쌀가루를 하얗게 빻아
보은 대추와 호박고지 넣고 
밀가루로 시루와 솥을 봉하고 한시간쯤 불때어서
그 떡이 익으면 반듯하게 잘라
수 십개 장 항아리에도 
성주신 터주신 조상신께도 정성껏올리고
구성지게 비나리나 한번 해 볼테다
사촌들에게도 나눠 주고 온 식구들 들러 앉아서 
초정리 광천수로 만든 식혜 한사발
을 들이키며
부모님께서 더 늙으시기전에
동생들 불러 모아서
도란도란 옛이야기 나누리라
잘 익은 그 조선호박
못나고 흔하디 흔하여도
늙은 호박의 그 탁월한 약효를 말하여 무엇하리
그 기막힌 약발을 받아서
엄동설한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이내 몸이었는데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