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유학의 학통 이어받은 '경주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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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유학의 학통 이어받은 '경주손씨'
  • 조연경 기자
  • 승인 2022.05.05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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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이미지의 석종은 자신의 뿌리를 되찾게 해 줄 것이며, 좌대는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원형을 띠고 있다. 3개의 POST는 각각 충효, 공경, 번창을 상징함으로써 과거의 충효사상을 본받아, 현재에 웃어른을 공경하고, 미래로 번창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역동적인 조형과 리듬감을 준 108개의 면은 석종소리의 마디마디를 표현한 것이며, POST의 삼각형 구도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다. 

삼한시대의 진한은 6부촌으로 형성된 국가였는데 이 부족국가가 연맹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칭하니 곧 신라의 건국이다.

신라 제3대 유리왕9년에 6부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하니 그중 무산대수촌장 구례마는 손씨로 사성됐으므로 여기서 손씨가 시작됐다.

손씨의 세계는 경주·밀양·평해로 관향을 달리하면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모두 구례마를 원조로 하고 신라 대효이신 순을 중시조로 한다.

그 후 다시 세계가 전하지 않는 채 아,장,보 세분이 고려 때 대관으로 전해올 뿐 경주손씨 족보는 고려 말 1세 경원, 2세 현검 선조를 비롯해 조선 초기에 3세 감찰공 등을 위시해, 계성군 사성, 계천군 양민공 소, 월성군 경절공 중돈은 3대 봉군이요 양대 시호의 집안으로 이어오는 명문이며 위 군호는 모두 경주란 뜻이다.

사성은 세종 때 집현전 교리로서 한글창제에 참여한 학문과 외교에 명성이 높았고, 소는 문과에 급제해 세조 때 이시애 난을 평정하는데 참여한 적개공신 이조참판이며, 중돈은 문과에 올라 좌참찬에 올랐으며 상주목사 재직 시 선정에 감흠한 주민들이 생사당을 세워 화상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고 선정비도 세워 공덕을 기렸다. 또한 청백리로서 우리나라 유학의 학통을 이어받은 현인이다.

전통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는 경주손씨 대종가가 서기1457년도에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다. 대종가는 당호를 서백당 또는 송첨이라 하며 국가 지정문화재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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