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쉘부르가 있었다면
종로에 세시봉이 있었다면
현재의 인사동엔 담갤러리 카페가 문전성시 영업중이다
이곳은 시인,화가,배우,이 시대의 묵객들이며 거리의 연주자 들 까지도 수용 범위가 참으로 광대무변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아웃사이더 고미술계의 신진 세력에다가,
이제는 한참 한물 간 육체파며
해외파 건달까지
국내파 인사동의 나까마며
학계의 지존이신 명망있는 교수들도 들락 거리는데,
주인마담은 곱게 늙어 가지만,
현대미술에도 약간은 조예가 있어
가끔은 점심시간 음식을 먹으러 온 젊은 친구들에게는
도슨트 역할도 자처하고 눈 웃음만은 거의 마릴린먼로 뺨치는데,
이러 저러한 인사들이 가끔 우연인듯
필연인듯 어떨때에는 모두가 하나 되어 밤을 지세우기도 하며 와인을 음미하기도 하고
인생과 예술을 안주삼아 토론도 하고 진지한 삶을 성찰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이었나,
대 배우이시고 원효대사 역이며
계백장군역 등 으로 TV 사극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멋지게 소화하셨으며 늘 모임자리에서는 좌장이신
대 배우 임혁선생께서 멋지게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흘러간 노래도 불러 주시고
흥을 돋아 주셨는데,
우연히 합석을 하게된
쌩짜 목사
엊그제 귀국 했다는
미 합중국 플로리다에서 목회를 한다나
영업을 하였는지,
철 지나서 철을 잃었나,
알콜에 푹 담겨져 간뎅이가 부었나,
버릇을 해장국에 말아 쳐 드셨나
감히 대장님 이신 우리 임선생님 늠름한 어깨에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손을 올리며
어설프고도 버릇없는 작태를 여러 번 대책 없이 자행하는 기라
어쭈,한 술 더떠,빠다를 처먹어 혓바닥이 짧아져서
말도 반토막으로
미국에서 목회하는것이 또 뭔 대단한 자랑질 이라고 이름도 조선 사람 이름이 아니고,
조지였나 조세피나였나
하여튼 조지였다
그 순간 이 중생 얼마나 맘을 졸였던지,
그 목사 양반 누런 옥수수 몇개 털리는 줄 알고
온통 조바심 났었네
태촌이도 양은이도 성님하는 분이신데
그날은 마이 참으시더군
그 목사 그 날이 운수 좋은 날이었네,
공짜 와인도 배불리 얻어 먹고
옥수수도 멀쩡하게 길이 보전 하였으니,
올챙이 배가 걷어 차이지 않은건 또 얼마나 다행이더냐,
주접이나 떨던니,
영어가 객지나와서
고생이 막심 하더만,
혓바닥은 반토막인지 계속적으로 반말 짓 걸이 였다
목사라 하기에 미국에서 왔다기에
백악관을 찾기에
몇 시간 무보수로 마음먹고 놀아 주었더니
그 인간 나한테도 끝까지 틱틱 반말질 이었다
인격도 거의 반값인 그 자는
와인값도 내지 않고
좆 방울 딸랑 거리며
염치도 없이
매너도 없이
저문 인사동 어둠속으로 유유히 겨들어 갔다네
오만 불손했던 목사에 대한 기대는 시멘트 굳게 굳어서 건물이 지어지듯이 역시나 또 그렇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굳게 굳어버린 이미지였네
이런 우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