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조선조 20대 명벌로 꼽히는 '의령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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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조선조 20대 명벌로 꼽히는 '의령남씨'
  • 조연경 기자
  • 승인 2022.05.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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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남씨 선조들의 절의와 유서 깊은 역사의 특징을 잘 살려 세련된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아름다운 곡선의 원은 서로 대칭을 이루고, 통일된 조화 속에 화합을 뜻하고 원안의 타원은 강한 생명력과 문중의 번영을 의미한다.

남씨 성은 신라 경덕왕 14년 시조 영의공 민이 왕으로부터 남씨로 사성 받은 것이 시초이다.

1200년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남씨는 영양, 의령, 고성 삼관으로 나누어졌다. 의령남씨의 관조는 고려 통헌대부 추밀원직부사 남군보이다.

의령남씨는 고려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 자헌대부 참지문하부사를 지낸 곡은 을진은 나라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신념으로 감악산 암굴에 들어가 단식 순절한 절신으로 후세의 추앙을 받고 있다.  조선조에는 충경공 재와 강무공 은 형제는 조선 개국에 훈1등의 공을 세워 중앙 정계에 진출, 재는 의정부 영의정이 되었고 은은 증 좌의정이 되었다.

이후 대대로 숱한 현신과 학자들이 배출되어 씨족의 위세를 높여 초간 권문해는 대동운부군옥에서 의령남씨를 조선조의 20대 명벌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정승 6명, 대제학 6명, 판서 22명, 문과급제자 140여 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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