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되면 심심치 않게 논밭에서 감전 사고가 납니다. 얼마 전 인근 옥천에서 아버지와 딸 두 부녀가 사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자기가 정성을 들인 만큼 수확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산 밑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개와 한편이 돼서 ‘야생동물과의 전쟁’을 합니다. 고구마는 멧돼지, 콩은 고라니, 옥수수는 너구리, 각종 과일은 하늘을 나는 새의 먹이가 됩니다.
지난 가을 무씨 뿌리고 1주 지나 잎이 나올 때, 올봄 고구마 심고 비가 내려 새순이 날 때에도 고라니가 들어와 아주 깨끗하게 ‘자신들만의 잔치’로 만들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심정처럼 울화가 치밀고 화가 납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하면 농작물을 보호할 수 있을까 묘수를 찾습니다. 그물 같은 울타리도 설치하지만 정도가 심하면 전기 울타리를 설치합니다.
전기 울타리 때문에 이제 농부들은 이른 새벽에 논의 물꼬를 보거나 밭에 일하러 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장마철이 되면 밤새 내린 비로 걱정이 돼서 잠도 못 자고 이른 아침에 밭에 나가보는 우리 농부들이 감전 사고로 희생됩니다.
과거 신분사회와는 달리 오늘날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하는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른 자가 실패한다고 간주하여 가난은 죄악이고, 자선이나 동정은 엄격하게 말하면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거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많은 자선행위를 했지만 자선에 대하여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른바 자선행위에 쓰느니 1000달러 가운데 950달러는 차라리 바다에 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복지로 먹여 살리는 무익한 거렁뱅이나 게으름뱅이 하나하나가 이웃을 부도덕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농부들도 그래서 가난과 싸우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농민들에게 더욱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농부들에게 ‘느린 해결책’을 권합니다. “느긋해지세요” “천천히 하세요”
욕심 앞세운다고 나무라기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인식하여 누구나 생활하고 싶어지는 농촌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