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은인

[풍경소리]

2021-08-31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도 선생도 낳아주고 가르쳐준 은인도 많았지만
수 많은 방황 끝에 어지간히도 쏘댕기다
대학도 몇군데 다녔지만
중도에 모두 다 때려치고
안정을 찾지 못할 때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살까 죽을까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처럼 고뇌를 품고 다니던 시절에
미국에서 돌아와 안양에서 머물 때였던가
동국대 국악과에 편입학을 하였다


삼십도 훌쩍 넘은 나이에
도반들이 하필이면 웬 기생오라비과를
철 지나서 다니냐며 놀려댈 때인데
소리나 배워 전주대사습놀이에나 나가 장원하여
소리꾼으로 등극하려는 욕심도 없었고
운당여관 박귀희 선생처럼
가야금 병창을 배워 인간문화재 할 계제도 아니었는데
범패 작법무 배워 부처님 탁자밥 착실히 내려 먹고
책이나 실컨 보자며 2학년 편입하여 들어간 대학에서
평생 스승 법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지


속납은 형님 뻘이었지만
승납은 아버지 뻘
30대 초반에 정교수 하시고
세계 각국 구석구석 안 가본 곳 없으신
장골에 호남 쾌남형 미남에다 종합예술인으로
소리면 소리 눈부시게 찬란하게 추시는 바라춤 작법무는
장엄의 완성이었으며 불교 미학의 극치였다
먼 발치에서만 뵈어도 신심이 우러나는
남아 중에 남아로 속가 성은 강릉김씨
그분의 은사 스님도 필자가 속가에 살 때에
작은 인연이 있었고
워싱턴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 오셔서
일주일간을 곁에서 시중도 들어드린 인연도 있었으니
아마도 속세에서부터 법현 교수님과는 두터운 인연이 있었던 듯하다

 

각설하고
법현 스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고비마다
늘 응원해주시고 지켜 주시고
학부 때부터의 인연으로
석사도 박사도 지도해 주시고 논문도 완성케 해 주셔서
팔자에 없는 박사학위도 취득케 하여 주셨고
구비구비 인생길 당신도 힘드신데
일깨워주시고 용기 주시고
주머니에 돈 떨어져 살길이 막막할 때마다
거금도 흔쾌히 아낌없이 베풀어 주셔서
못난 나의 명줄을 늘려 주신
내 인생의 큰 은인이시다


단순한 은인이라고 하기보다는
내 젊은 날 외국여행 대부분의 감미로운 추억이
법현 스님과 늘 함께였다.
미국, 멕시코, 터키, 이집트, 그리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엘 등등
지금은 꿈도 못 꾸는 여행의 노정이
그 아름다운 잊혀질 수 없는 꿈같은 일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네덜란드에서 버스를 타고
유럽의 이름난 도시 브르쉘을 거쳐
파리를 갔던 일이며
멕시코의 자카테카스(Zacatecas)
그 유서 깊은 오지를 밤을 새워서
10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탈탈 달린
멕시코 시티에서 출발하여 간 기억이며
아~ 그때의 데낄라 그 독한 술이며
그 지역의 미주며 미식들
아! 참, 미인들
아직도 어제의 일인 듯 눈에 선하다


내 인생길 오르막 내리막 여행에서
법현 교수님은 늘 함께이셨고
어렵고 힘든 여정 때에는
언제나 어깨를 툭툭 쳐 주시며 “힘내요”
당신께서도 어려우실 텐데 제자의 앞길 번쩍 트이라고
거금도 선뜻 내어주시는
대장부이시고 호걸 중에 호걸이신 분
항간에 어느 잡것들이 우리 교수님을 감히 평한다 말인가?


내 은인이신 내 생명줄이신
법현 교수님
어제 밤늦은 시간 불을 켜놓은 채
옛 책을 보다 깜박 잠들어 있을 때에
그 늦은 시간에 거금의 금일봉을
잔금이 제로에 가까운 통장에 꽂아주시며
몹시도 슬럼프에 빠진 제자의 등을
자상히도 두드려 주신다
눈물겹게, 힘내서 열심히 달려 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