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색끝에 다듬어진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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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색끝에 다듬어진 결과물
  • 임영호
  • 승인 2017.05.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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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인문학 노트] 책 속에서 길을 찾다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동양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 말대로 태산준령 앞에서 호미 한 자루 드는 격이다. 그동안 그저 단편적으로 조금씩 읽어서 그 전체를 아는 체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태산준령 앞에서 기가 질려 서있는 나에게 그 속은 이렇고, 그 길은 저기다! 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준 책이 있으니 바로 신영복교수의 『강의』 부제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다.

사람들이 단순하게 느끼지 않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년 이상 복역한 사람이 겸손한 태도로 아주 편하게  마음에 와 닿는 예쁜 감성적 말투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분은 전공이 경제학이고 사회학부 강의를 하시는 분이다. 감옥시절 한권 가지고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 사서삼경 같은 동양고전이고 함께 감방에 있는 분이 한학자이기에 공부할 수 있었다고 담백하게 말한다. 독방에 앉아 기한 없는 긴 세월 앞에 자신이 짊어진 시간과 공간을 내려놓고, 깊은 사색 끝에  비로소 다듬어서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말한다. 고전독법 역시 과거에 대한 재조명이 진짜 생명이다. 따라서 당대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동양고전 읽을 때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기본관점으로 삼았다. 결코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고 말한다.

동양고전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다. 그때는 한마디로 사회변혁기이며 역사의 격동기이다. 주(周)황실을 정점으로 하는 고대종법(宗法)질서가 무너지면서 부국강병이라는 국가목표아래 서로 패권국가가 되려고 무한경쟁 하는 시대에서 나타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동양고전이다.

저자는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이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세계는 지금 나라마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이고 신자유주의라는 무한경쟁체제의 상황이다. 우리가 가야할 미래의 길은 오래된 과거에서 해답을 찾아 우리현재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래담론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고전을 통하여 21세기의 새로운 문명론 그리고 최대한의 사회건설담론이 개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가 동양고전을 강의하면서 걸어놓은 화두(話頭)는 관계론(關係論)이다. 유럽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존재론(存在論)이라면 동양의 사회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고 말한다.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양문화라는 개념은 서양문화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조어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것은 서양문화이다. 현재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패권국가의 일방 주의적 세계전략과 초국적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전략은 존재론인 자기를 부단히 강화해나가는 자기증식운동(自己增殖運動)의 필연적 결과라고 본다. 이런 서양문화의 구성 원리에 대한 성찰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구성 원리이다. 동양사상과 문화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문주의적인 가치 중심이다.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기대’처럼 서양문명에 대한 반성과 동양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새롭게 필요한 시기이다.

동양사상은 인성이다
동양사상이 지향하는 가치는 인성의 고양(高揚)을 최고로 설정하는 사회이다. 인성은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양사상의 핵심적 개념은 논어에 나오는 인(仁)이다. 인은 기본적으로 인(人)과 인(人) 즉 두사람(二 人)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인성의 고양도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이라 한다.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 나의 친구와 남의 친구를 함께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어주는 것(成人之美)을 인이라 한다. 『주역(周易)』은 점치는 책이다. 그것은 오랜 경험이 축척된 지혜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불안한 상황에서 탄생한 미래전망에 대한 갈증의 산물이다.

주역에서 자리(位)는 운명적이라 한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 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저자는 70% 자리를 강조한다. 자신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것이 좋은 것이다. 자기의 노력도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하여 죽간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공자(孔子)의 어록인『논어(論語)』에서 화동론(和同論)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다. 화(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이며 반면에 동(同)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관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는 지배와 흡수합병 논리이다. 유럽 근대사는 패권적인 강철의 역사이며, 존재론적 논리이며, 지배흡수합병이라는 동(同)의 논리이다.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하여 평화공존이 가능하며,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공자는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담론을 내놓는다. 특히 그중 많은 것 들이 인간관계에서 만세의 목탁,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많이 해석된다. 學而時習知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吾日三省, 溫故而 知新, 君子不器, 道之以德齊之以禮 有恥且格, 德不孤 必有隣, 民無信不立. 克己復禮, 學則不固, 邦有道則智, 知者樂水 仁者樂山, 學而不思則罔등 주옥같은 금언이다.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孟子)』는 민(民)에 의한 혁명의 논리를 주장한다. 왜 맹자는 당시의 군주가 외면하는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했을까? 맹자는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새 임금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직단(社稷壇)도 헐어 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직단은 로마교황청과 같은 최
고권위의 상징이다. 이 논리는 백성들이 폭군에 의하여 시달리는 상황을 목격하고 스스로 고민 후 내린 소신 있는 지식인의 용기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많은 숙어들의 출전이 『맹자(孟子)』에 있다. 緣木求魚, 五十步笑百步, 壟斷, 浩然之氣, 仁者無敵, 恒産恒心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인지 단한권의 고전을 택한다면 맹자를 천거한다는 저자의 말이 머리에 남는다.

중국사상사에서 유가사상에 비판담론인『노자(老子)』는 부국강병의 국가 정책에 희생되는 민초들의 아픔을 보고 약한 자가 이긴다는 희망을 선포한다. 노자사상의 핵심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自然)이다.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장한다. 이 후 2500년이 되서야 서양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자연을 외친다. 노자의 정치론도 순박하고 자연스러운 질서이다.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는 것이다. 나라도 작은 나라가 좋고 글씨조차도 서툰 글씨가 명필이고 나아가는 것(進)보다는 되돌아가는 것(歸)을 선택한다. 지식이나 지혜에 대한 숭상도 반대한다. 그래서 노자의 눈에는 공자(孔子)조차도 아는 체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공자가 말하는 세상의 목탁 같은 가르침도 자연에 대한 부분적 해석을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적 가치는 인위적 재앙으로 본다.

노자의 시각으로 보면 자연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 오직 농부만이 노자가 말한 도(道)에 가깝고, 무엇인가 하겠다고 공약하거나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정치인은 아주 비노자적인 사람이다. 현대 자본주의 모순이 드러나 보일 때 노자는 생환할 것이다.

논어 맹자가 상식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면 『장자(莊子)』는 비상식의 세계,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논리이다. 송(宋)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약소국의 비애와 고통, 백성이 유랑을 겪은 모진 역사에서 장자는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존중한다. 그는 초위왕(楚威王)이 자신을 재상으로 삼으려하자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기보다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살겠다’ (寧生曳尾塗中) 고 말하며 거절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 사물은 미미한 것이라 여긴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 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 할 수 없다. 한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9만 리 장공에서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자와 나비는 하나이다.  교조에 묶인 굽은 선비들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의 사상은 소요유(逍遙遊)이다. 글자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으로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도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정면도전하는 좌파조직 좌파사상이 있다.『묵자(墨子)』이다. 중국에서나 우리나 묵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다. 20세기 초 마르크스 자본론이 중국에 소개 된 후 2000년 만에 다시 복권된 사상이다. 어떠한 경우든 시대가 사상을 낳는다. 춘추전국시대에 전쟁의 모든 희생은 최종적으로 기층민중이 져야하는 현실을 타개하고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이론이다. 때문에 그는 반전 평화론 자이다. 그는 천하의 혼란의 원인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며 겸애(兼愛)를 주장한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망명한 묵가라는 설도 있다. 묵가의 검소하고 실천적인 모습은 묵돌부득검(黙堗不得黔)이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묵자의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굴뚝에 검댕이가 없다는 것이다. 조직의 강건함과 실천의 비정함은 천하제일이다. 묵가 일파 183명이 성(城)의 수비에 실패하자 신의를 지키려고 성루에 누워 자살했다. 묵자는 다른 학파와 아주 다른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순자(荀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추구한다고 한다. 소위 성악설(性惡說)이다. 그래서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계통과 달리 법으로 사회제도와 규범을 정하여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법가(法家)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나온다. 사상이란 일정한 사회적 조건에서 생성된다. 법가는 전국시대에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한 새로운 지주층과 상인계급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또 법과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육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예(禮)란 기르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것이 순자의 교육론이다. 인위적으로 가르쳐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법은 너무 각박하다. 그 제도적 통제가 가져오는 폐단을 경계한다. 순자는 그런 한계를 음악으로 순화시켜야 한다면서 음악을 권장한다. 예론과 악론(樂論)은 그래서 같이 간다. 순자사상은 공자나 맹자에 비하여 훨씬 현실적이었으며 당시 패자들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 그는 유가의 인의(仁義) 묵가의 겸애(兼愛) 정치는 고삐 없이 사나운 말을 모는 것과 같다고 한다. 송나라 농부의 우화인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어제 일어난 일이 오늘 일어나리라고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다. 법가의 큰 특징은 현실성이다. 세상이 변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치자도 성인이나 군자가 필요 없이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공개적인 성문법을 통한 공정한 행정, 엄정한 형벌과 관료제 조직, 군현제 지방제도, 신상필벌 시스템 등 어떻게 보면 근대행정의 모체가 『한비자(韓非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는 이런 제도뿐 아니라 군주의 절대 권력을 옹호하고 군주는 마키아벨리
(Machiavelli)의 군주론(君主論)에서와 같이 은밀한 권모술수가 권력유지에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한비자(韓非子)』의 이런 간언을 자기가 살고 있는 한(韓) 왕은 거절 한다. 엉뚱하게도 적국(敵國)인 나중에 시황제가 된 진나라 왕이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 사람과 교유하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고 까지 감탄하였다. 약소국인 진나라가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수용하여 전국시대를 통일한다. 그러나 그 토대를 마련해준 한비자는 죽는다. 당시 진왕의 막하에는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李斯)가 있었는데 진나라가 한나라를 친다는 유언비어를 흘려 화평의 사자로 한비자를 오게 하여 머물게 한 뒤 이사가 거짓말로 왕께 간언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한다. 이사도 자기보다 더 권모술수가 뛰어난 간신 조고(趙高)에 의해
자신이 제정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는다. 이건희 삼성회장도 한비자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관리의 삼성이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창신(創新)이 어렵다고 한다. 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 현재 미래 이것은 우리가 인식의 편의상 도입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일시에 맞이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사상은 현재에 도입하여도 적절치 않은 것이 없다. 우리의 시각을 ‘여기의 현재’에 유폐시키지 않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친 전체적
조망과 역사인식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사람이 곧 거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 전 총리는 ‘진짜 실력은 학력 경력 전문성 이런 것이 아니라 인성이다’라 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해서 주위 사람들에게‘저 사람 좋은 사람이다. 저 사람 따뜻한 사람이다. 저 사람 믿을 만하다’라는 평가를 듣도록 하라고 말한다. 사람에서 가장 중심은 가슴(heart)이란 생각이 든다.

묵자는 ‘거울에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이 곧 거울이다’는 뜻이다. 중국고전 사상가가 사람에 느끼는 마음을 거울에 대는 일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인간 관계론의 보고(寶庫)인 동양고전에서  인성을 기를 수 있는 길을 찾는 이유이다. 신영복의 『강의』 내 마음의 거울이며 나의 경전이다. 정말 느끼는 것이 많은 책이다. 

저자는 글을 끝내면서 하나의 제안을 한다. 인성을 고양하기 위해서 동양고전 말고도 시와 산문을 읽으라고 권한다.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이 인성을 고양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나는 마음에 눈 오는 겨울 풍경을 그리면서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시 『강설(江雪)』을  읽고 싶다.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의 발길 끊어 졌는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눈보라 치는 강에 낚시 드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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