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아버지와 외로움, 그 고독의 뒤안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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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아버지와 외로움, 그 고독의 뒤안길에서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02.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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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버지와 나의 심정적 거리는 옆집 아저씨보다 멀었다. 산으로 들로 늘 분주하기만 한 젊은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놀아준 적도, 요즘 말로 서로 소통하는 법도 몰랐고, 어린 나는 가족이라는 동네에서 늘 한 구석의 왕따였다.

어머니는 촌동네 아녀자여서 요즘 청담동의 젊은 새댁 엄마들처럼 미래 지향적인 자식의 앞날 보다는 고스톱에서 잃은 몇십 원이 더 중요한듯 밖으로만 돌고, 아버지·어머니라는 관습적 부모와 애정결핍 자식간의 습관을 들이는 나의 사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외로워져 늘 홀로였던 시간이었다.

열여덟 되던 해 봄 “말새끼는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새끼는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을 찰떡처럼 신봉한 아버지는 장남인 나를 변두리 영등포 어느 구석진 곳에 유배를 시키듯이 보내었다.

영등포에서 3번 버스를 타면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 내리는 한시간도 훨씬 넘는 통학길도 마냥 외롭고 고달프기는 했지만 하교 길이면 성지순례 하듯,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거르지 않고 일상적으로 들리던 헌책방 몇군데가 있어 그토록 처절했던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미아리며 정릉의 헌책방에서 늘 쭈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껄렁대던 놀새 같은 발랑 까진 친구놈들과 동숭동 거리며 여의도 한강변에서 소주병깨나 비우는 법을 익힌 이후 줄기차게 마신 그 음주벽도 결국은 이 세상의 외로움을 해결하기에는 속수무책이었을 뿐.

임시방편 해결책으로, 아님 어떤 보상심리로, 천방으로 중구난방하며 무엇이든 모으는 일에만 열중 하거나 집중하게 된 나는 언제나 홀로인, 홀로였던 나만의 삶만을 고수하며 줄기차게 외로움을 삭이는 법을 터득하며 살아왔다.

어느날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선택한 3류 대학의 허접한 신학생 과정도 훌쩍 때려치고 스물두 살 무렵 출가인지 가출을 서너 번 반복 하다가 아예 산중에 눌러 붙어 30년 가까운 세월을 낭비 했거나, 명실공이 허울 좋은 떠돌이가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헤메다가는 어언간 어디에든 오래도록 정주하고 싶을 때는, 이미 쉰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그리도 닮고 싶지 않은 내아버지의 외로운 인생처럼 만신창이의 육체가 되어 있었다. 비스무리한 가족 병력을 지니고 한 주먹씩의 약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대책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후천적 병력으로 한 쪽 눈이 먼 아버지, 혈압으로 두 번쯤 쓰러진 내 아버지처럼,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 백내장, 알콜성 지방간에 “어쩜 지 아비처럼 밥보다 술을 좋아 하는지”라고 말해 주는 엄마의 말이 새삼 진실이었음을 깨닫고는 문득 아버지가 살아온 그 외로운 삶을 세심히 들여다본다.

아, 나도 아버지처럼 외로워 습관성 음주에 홀로 지내며 고독을 씹고 가끔은 장소 시간을 불문하고 습관적으로 저절로 발길이 멈추던 책방에서 골똘히 사색하고, 외로운 아버지처럼 저잣거리의 한 잔술을 그윽하게 기울이던 그 습관성 음주벽이며, 여태 포기하지 않고 쉰이 넘도록 살아온 시간이 나의 아버지처럼 그 외로움을 스스로 삭이는 법을 터득하며 살아온 모진 세월이다.

외로운 한 사내의 시간을 뒤쫓아 그렇게 내 달려온 것을 문득 이제사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아~ 아버지의 인생, 그 고독했던 삶을 나는 아버지처럼은 다시는 살지 않겠다던 그 딴죽을 걸던 어리석었던 지난날들이 새삼 뼈저리게 후회스러워질 뿐이다.

그 외로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막돼먹은 아들놈은 이제 이리저리 생에 치여온 외로웠던 아버지의 인생도 보듬어 가끔은 뒤돌아 보는 여유를, 어쩌면 내아버지 뿐 아니라 이 세상 여러 아버지들의 그 지난한 삶의 고단한 외로움을 헤아려본다.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더 올라가 나의 12대 쯤에 이르면 이미 12촌이 되어버린 중시조 이신 추월당 한산두 할아버지쯤, 더 거슬러 올라가 외로웠던 모든 이 땅의 아버지들의 고달픔과 어느 누군가의 아버지 뿐 아니라 자식을 버리고 출가한 고독한 아버지, 우리 스승 붓다의 그 뒷모습을 밟으며 세월에 짓눌려 늙어가는 중생인 우리 아버지의 젊은 날도 이제야 조금 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그 외로움을 뒤늦게 깨닫고는 아버지를 한 없이 가여워하는 중이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이제 남은 인생은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아버지와 쉬엄쉬엄 걷기에 족하고, 얼마 남짓한 아버지와 나의 한정적 세월은 이미 화해하였으며, 더 없이 아쉽고 애틋하지 않을 수 없다. 60을 향해서 열심히 뛰는 나와 80을 향해 서서히 걷는 아버지는 서로의 인생길의 외로움에서 소주 한 잔 들이키는 여유도 이제야 가끔은 맛본다.

새봄에는 싱싱한 오징어를 살짝 데쳐 감칠맛 나는 엄마표 초장에 한 잔 하고 “다정히 손잡고 고개 넘어~” 어쩌구 하는 흘러간 창가도 같이 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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