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지르는 서민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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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 지르는 서민행보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02.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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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꼭 선거철만 되면 서민이 못되어 안달이 난 부류들이 있다. 이를 보는 서민들은 정말 눈꼴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는 권력과 부를 누리며 고급 세단을 굴리고 호의호식하며 서민과 동떨어진 삶을 영위하는 귀족인 정치인들이 서민표를 의식하여 꼭 선거철에만 반드시 통과 코스처럼 하는 게 이른바 ‘서민행세’다.

버스를 타보고 지하철도 타며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다가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서민들의 음식인 떡볶이도 먹어보고 순대도 맛보고, 고급 양주에 길들여진 입맛을 값싼 소주와 막걸리에 맞추려는 듯 갖은 위선을 다 떠는 모습들을 보는 서민들의 눈에는 그들이 참으로 가증스럽기조차 하다.

소탈하고 서민스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선거철에만 하는 이벤트이지만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일을 하다 보니 반드시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지배층들은 수행원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갖 수발을 들어주는 고위직을 오래도록 머물고 누리다 보면 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지기 쉽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의 후보였던 이회창은 시장에서 상인이 건넨 흙 묻은 오이를 털지도 않고 먹어 “진짜 서민들은 오이를 씻어 먹는다”는 일침을 받았고, 정몽준 전 국회의원은 과거 전당대회 경선 토론에서 1000원인 시내버스 요금을 70원이라고 하여 망신을 톡톡히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 때마다 수시로 빈번하게 재래시장을 다녔지만 취재진이 카메라 잡을 때만 숟가락을 들 뿐 음식에는 입을 대지 않아 뒷말을 무성히 남겼다. 

또한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고 인기 몰이에 나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정치 데뷔 20일 만에 퇴장한 건 현실정치에 대한 내공 부족도 원인이었지만 어설프게 ‘서민흉내’를 내다보니 이러한 일련의 실수연발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지하철 승차권 발매기에 1만 원권 지폐를 한꺼번에 몇 장을 넣는가 하면, 편의점에서는 프랑스 생수 ‘에비앙’을 꺼냈다가 당황한 보좌진에 의해 국산 생수로 교체하는 영상이 퍼져 논란이 일었다.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을 땐 환자가 해야 할 ‘턱받이’를 자신이 해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몸에 맞지 않는 서민행보가 ‘서민 코스프레’라는 역풍으로 돌아온 셈이다. 

최근 경기침체 속 코로나19(우한폐렴) 사태까지 겹치며 이맛살 주름이 깊어가는 소상공인을 향해 건넨 정세균 국무총리의 서민행보도 역풍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침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을 위로한다며 서울 신촌의 명물거리에 나섰다. 대학병원과 대학에 인접한 거리는 개강을 앞두고 혼잡했던 예년과 달리 거리를 지나는 이들조차 드물 정도로 한산했으며 한겨울 파리만 날리듯 상점들은 텅 비어있었다.

이에 총리가 어느 한 상점에 들러 “여기가 유명한 집이라면서요, 외국 손님들도 많이 찾느냐”고 인사를 건네자 상인은 “원래 손님이 많은 편이긴 한데 코로나 때문에 아무래도 많이 줄었다”라고 답했다.

이쯤 되면 ‘애로가 많으시네요, 정부에서도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하면 될 사안인데 선거철을 의식해서 인지 너무 앞서가서였는지, 아니면 평소보다 서민에 대한 애민심이 더 돈독해져서인지, 총리는 “금방 또 괜찮아 질 것”이라며 “원래 무슨 일이 있으면 확 줄었다 좀 지나면 다시 회복되고 하니까 그간에 돈 많이 벌어 놓은 것 갖고 조금 버티셔야지”라면서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상인의 말에 오히려 “손님이 적으니 편하시겠네”라는 말을 건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 총리란 자의 개념이 이 정도이니 나라꼴이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정 총리의 발언이 어려움에 처한 상인에게 민생을 책임져야할 국무총리가 할 법한 발언이었냐는 발언의 적절성도 문제이지만, 현 정부의 자영업에 대한 인식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씁쓸했다.

“민생탐방 응원쇼인 줄 알았더니 민생염장 막말쇼였다”는 야권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총리의 분별력 없음과 파탄에 이른 민생경제와 서민의 생업에 대한 몰이해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닥친 절망적 현실도 파악 못하는 총리, 그를 비난하는 서민들의 여론의 몰매가 매섭기만 하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어느 3선 국회의원은 ‘버스도 혼자 못 타는 바보가 돼 있더라’며 얼마나 무능한 생활인이 됐는지 알았다고 자기고백을 했다. 힘겨운 삶을 사는 서민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염장이나 지르며 꼭 선거철에만 이벤트 하듯 하는 서민 행보는 멈추고 평소 혼자 시장도 가보고 골목길도 걸어보아야 한다. 진정성 결여된 서민 흉내는 이젠 좀 제발 멈출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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