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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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싯다르타!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05.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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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오지 라오스를 가본 적이 있다. 우리의 60~70년대 생활수준으로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밀림에서 사는 사람들의 처소는 움막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어린시절처럼 먼지가 펄펄 날리는 비포장 도로에서 만나는 어린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꾸밈없는 천진난만한 표정은 해맑았으며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전 농경시대의 옛시절을 연상케 했다.

아직도 동남아에는 사람들이 큰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와 비교했을 때 그들은 가난한 살림이지만, 현대화되고 산업화 된 풍요 속에서 마음껏 소비하며 편리한 아파트에 살며 고급 자동차를 소유하고 부족함 없이 사는 세상의 사람들보다도 ‘행복지수’는 훨씬 높다고 한다.

2600년 전의 역사적 부처님이 살았던 당시에 주로 활동하시던 주무대는 변방의 오지였다. 편협한 이교도들이 가끔 떠벌리는 소리가 있으니,

“미국이나 유럽을 보라 그들이 왜 잘 사는지?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이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발전한 이유는 국민이 유일신을 믿기 시작했기에 가능했다. 선진국들을 보라. 대부분이 개신교 국가이며 예수를 믿는다. 동남아시아의 불교 국가들을 보라. 인도가 얼마나 가난한가? 부탄은 또 얼마나 가난한가? 라오스가 어떤가? 동남아의 불교 국가들이 가난한 이유는 유일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천국이고 불신은 지옥이다. 믿음이 은혜를 받는다. 그래야 경제도 발전한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목회자들은 꽤 여럿 있다.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예전에는 인도가 로마처럼, 미국처럼 부유했다. 3000년 전에 이미 벽돌로 만든 대규모 계획도시를 건설할 정도였다. 지금은 인도가 못 산다 하여도 가난한 국민이 많아도 수년 뒤에는 인도가 더 잘 살 수도 있다. 지난날 부유했다고 현재도 부유한 것도 아니고, 지금 부유하다고 영원히 부유한 것도 아니다.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이다. 현대의 인도인들이 사고하는 폭과 깊이도 예사롭지 않다. 싯다르타가 태어날 때 인도는 16개국으로 쪼개져 있었다. 히말라야산맥 아래, 인도 북부의 카필라 왕국은 부족국가 수준의 아주 작은 나라였다.

싯다르타가 출가했을 때 16개국 중 작은 나라들은 이미 정복을 당하고 있었다. 대신 큰 나라였던 마가다·코살라·아완티·왐사 등의 4개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붓다가 주로 활동했던 인도 북부는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 용호쌍벽을 이루는 지역이었다. 나중에 싯다르타의 조국인 카필라 왕국도 결국 코살라국의 침략으로 멸망 당한다.

라즈기르는 싯다르타의 자취가 서린 땅이다. 싯다르타는 알라라 칼라마의 곁을 떠났다. 눈을 감을 때만 피어나는 고요, 눈을 뜨면 곧 사라지는 고요는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싯다르타는 바이샬리를 떠나 이곳 라즈기르로 왔다.

그 옛날 수행자들은 걸어서 다녔다. 3월 초만 돼도 인도의 햇볕은 작렬한다. 봄과 여름에는 섭씨 40~50도를 넘나든다. 싯다르타가 라즈기르로 이동할 때는 어떤 계절이었을까. 만약 겨울이 아니었다면 싯다르타는 새벽에 걷고, 낮에는 쉬고, 저녁 무렵에 다시 걸었을지도 모른다. 불타는 태양을 피해서 말이다.

당시 라즈기르에는 웃다카 라마푸타라는 이름난 수행자가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를 찾아갔다. 웃다카 라마푸타가 이끄는 수행그룹의 규모는 알라라 칼라마보다 더 컸다. 따르는 제자만 무려 700명이었다. 알라라 칼라마의 제자가 300명이었으니, 2배가 넘는 규모였다.

싯다르타 당시 수행자들의 궁극적 지향은 ‘해탈(解脫)’이었다. 해탈이란 이치를 풀어(解), 고통에서 벗어나는(脫) 일이다. 그것이 ‘해탈’이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 이 모두를 중생은 뱀으로 본다. 맹독을 품은 채 노려보는 독사로 보는 것이다. 싯다르타도 그러하였다. 그는 독사로만 보이는 생로병사의 정체를 뚫고자 하였다. 생로병사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이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웃다카 라마푸타를 찾아갔던 것이다.

사람들은 웃다카 라마푸타가 “해탈의 경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까. 웃다카 라마푸타가 말하는 경지란 불교 경전에는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표현돼 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그것을 ‘해탈’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나(에고)’가 있어서 고통을 받는다. 그렇다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 해야 할까.

‘나’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나’가 없으면 생각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몸뚱아리를 가지고 사는 동안 생각은 자꾸만 올라온다. 물론 잠깐 동안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체험할 수는 있다. 그래봤자 잠시다. 생각은 다시 또 올라온다.

어쨌든 싯다르타도 스승을 모셨다. 그리고 수행에 몰두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싯다르타도 어느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그 자리가 ‘해탈의 경지’는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깊은 사색을 하였다. 아무리 궁구히 연구해보아도 해탈의 상태는 아니었다.

큼직큼직한 고뇌의 덩어리들은 사그라들었지만,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자잘한 번뇌의 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마치 정원의 풀을 뽑았는데 또 올라오고, 뽑았는데 또 올라오듯이 말이다. 싯다르타는 아직 ‘번뇌의 정체’, ‘생각의 정체’, ‘나의 정체’를 꿰뚫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스승에게 가차없이 물었다.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자리에서는 ‘나’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스승께서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스승께서는 번뇌를 다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의 지적은 단호했다. 웃다카 라마푸타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결국 싯다르타는 그를 떠났다. 세 번째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이었다. 떠나는 싯다르타에게 웃다카 라마푸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네가 먼저 해탈을 이루게 된다면, 부디 여기로 와서 우리를 해탈케 해달라.” 알라라 칼라마나 웃다카 라마푸타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수행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깨달음은 불완전했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떠나는 싯다르타의 뒷모습은 어떠했을까? 세 명의 스승을 만났지만, 그가 찾던 ‘열쇠’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간의 수행이 무의미하진 않았으리라.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졌을 싯다르타, 이제 더 이상 스승을 찾지 않기로 했다. ‘나 홀로 승부’를 걸 참이었다.

여법한 수행 장소를 찾아 또다시 길을 떠난 장부, 그 진리의 노정에서 당당히 길을 걸으시던, 아~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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