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죽음, 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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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죽음, 을의 죽음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07.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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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요즘 갑의 횡포와 을의 설움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어느 누구나 평등한 세상, 민주화 시대에 가진자들의 갑질과 오만이 지나쳐 을로 살아야 하는 이들의 절망과 상처가 심화되어 간다.

최근 상반된 두 죽음이 있으니, 현직 서울 시장의 죽음과 경주시청 소속 유망주 최모 선수의 죽음이다. 상반되는 두 죽음에서 느껴지는 비애감은 공통되지만, 상반되는 갑과 을의 죽음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심사는 가슴 저리고 씁쓸할 수밖에 없으며, 누구나 저승길을 나서야 하는 허무한 인생사는 슬픔의 정서를 벗어나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해 보자면, 오랜 역사의 기록인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의 월명스님의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월명은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서 재를 올리며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이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지전(紙錢)을 불어서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했다. 향가는 이러하다.
 

생사의 길은
여기에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갑니다 하는 말도
다 못하고 가버렸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와 가지고
가는 곳도 모르누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나 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제망매가’라는 향가가 지어진 사연은 이러했다. 죽은 누이의 영혼을 위로하며 지은 절절한 향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도 어디로 가는지, 언제 가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월명 스님은 언젠가 극락에서 누이를 만날 것이라 믿기에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네 인생에서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삶을 영위한다. 형제자매나 친구, 친지와의 영원한 이별이 언제 닥쳐올지 알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떠나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며, 그 슬픈 이별을 담담하게 이겨 내야 하는 것도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어디서 태어나 왔으며
죽어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
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나니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이와 같다네

 

이 멋진 시구는 나옹 스님의 누님이 동생이 나옹에게 염불을 배우고 깨달은 바 있어 읊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함허득통 스님이 원경왕태후의 천도를 위해 설한 법어라고 하기도 하며, 서산대사의 임종게라고도 한다. 여하튼 이분들의 본래 글에 첨삭이 있고 변형은 있었겠지만 더욱 잘 다듬어져 현재는 불가의 의례집인 ‘석문의범’에 영가법문으로 수록되어 있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불교 가르침의 기본토대가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인간도 실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중연생기(衆緣生起)에 의한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의 존재로 인연에 따라 오고 가는 것이다. 위에서 거론한 게송은 이러한 불교의 생사관을 구름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삶과 죽음은 갑이든 을이든, 그 어느 누구든, 죽음의 순간은 공평하며 비장하고 결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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