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뿌리] 고운 최치원 선생 시조 '경주최씨'
상태바
[가문의뿌리] 고운 최치원 선생 시조 '경주최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1.04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崔)자를 형상화하여 만든 것으로 산(山)자 모양으로 타오르는 성화이며 번창함을 상징한다.우측의 뾰족한5점은 새추자의 윗점과 우측4획을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수많은 후손들의 힘을 하나의 큰○로 모아 번영과 화합과 단결을 나타내고 있다.
최(崔)자를 형상화하여 만든 것으로 산(山)자 모양으로 타오르는 성화이며 번창함을 상징한다.우측의 뾰족한5점은 새추자의 윗점과 우측4획을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수많은 후손들의 힘을 하나의 큰 원으로 모아 번영과 화합과 단결을 나타내고 있다.

경주최씨는 최씨의 대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다. 최씨의 원조는 신라의 전신으로 경주에 자리잡은 사로국 6촌의 하나인 돌산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공이다. 신라를 세운 원훈으로 법흥왕 3년에 충선공으로 시호 받았고 태종무열왕 3년에 문열왕으로 추봉되었으며 유리왕 9년에 최씨로 사성받았다. 이것이 성을 갖게 된 유래이다.

경주최씨의 시조는 소벌도리공의 24세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최씨의 분파는 고운선생을 1세로 하는 경주최씨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고운 선생은 12세의 어린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합격하시고 그 후 여러 관직에 있으면서 많은 글을 지었는데 이 가운데 토황소격문은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귀국하여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문란한 국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시무책 10여조의 개혁안을 제시하여 아찬에 올랐다.

그후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실망하여 관직을 버리고 소요자방하시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치셨다. 고운 선생은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요 한문학의 조종이며 절세의 명문으로 명성을 천하에 떨친 분이시다. 문집으로 계원필경과 그밖에 많은 명저를 남기셨다. 고려 현종때 내사령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어 문창후에 추봉되었다.

경주 최씨는 시조 이래로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역사상 숱한 명현 학자 관인 장상을 배출하여 도덕문장과 절의훈벌이 찬연한 명문거족이 되었다. 경주최씨는 명가의 후예로서 높은 긍지를 가지고 오늘날에도 국가와 사회에 헌신 봉사하면서 조상의 빛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