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시장에서 떡 팔던 소녀, 미술로 고향을 꽃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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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시장에서 떡 팔던 소녀, 미술로 고향을 꽃 피우다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7.09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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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도전하는 여성들] 황혜진 대전공공미술연구원 대표

“전국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대전을 만들고 싶어요”

어렸을 때 엄마 손을 잡고 인동에서 떡을 사다 역전시장에서 팔던 소녀가 붓과 물감을 들고 다시 돌아와 고향을 바꾸고 있다. 문화예술융합사업을 추진하는 대전공공미술연구원 황혜진 대표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은 일상과 연결되는 구체적인 미술문화를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 단체로, 다양한 공공미술사업을 전개해 시민들의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다.

대전시와 공동으로 추진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지역의 대표적 슬럼가인 대전역 주변 원동 창조1~3길과 역전1~6길을 대상으로, 미술을 통해 자원의 재생, 공간의 재생, 삶의 재생을 이루고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도 대전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 가꾸지 사업, 고용노동부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 동구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을 진행했다.

5년간 원동, 정동 등 원도심에서 주민과 직접 부대끼면서 함께 삶을 가꾸어나가는 황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다 사업을 시작했다. 계기는.

불이 나면서 폐쇄된 채 방치되고 있는 학교 매점이 학생들이 일탈을 일삼는 장소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학교에 공간혁신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공간이 바뀌어야 아이들도 바뀐다는 생각으로 제안했는데 벽에 부딪치면서 학교를 떠나게 됐습니다.

지금은 공간혁신의 중요성을 알고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혼자서라도 공간과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어느 겨울 대전역 주변을 갔었는데 연탄 냄새가 진동하는 쪽방촌 한쪽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나는데, 쌍둥이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그랬는지 이런 곳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고 슬펐습니다.

문도 없는 집에서 할머니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와 아이가 옹알이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조사차 사진을 찍으러 갔다는 죄책감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펑펑 울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제안해 전국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 5년째 대전역 주변 동네에서 살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동네에서 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수십 년간 이곳에서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계신 주민들과 같이 밥 먹고, 자고, 싸우기도 하면서 저도 이곳 주민이 되었습니다. 2019년 프로젝트가 끝났지만 이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책임감도 있습니다. 원래 대전역 주변은 청소년 금지구역이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범죄율이 뚝 떨어졌습니다. 경찰철장 표창도 받았죠. 공예거리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모이자 동네가 환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범죄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대전은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역사가 시작된 도시입니다. 대전역이 생기면서 제일 먼저 원동이 조성됐는데 첫 동사무소 부지가 현재 무궁화갤러리 자리입니다. 여기에 제조 골목이 생기면서 중부권 최초 제조공장인 남선기공이 들어오고 철공소들이 들어서면서 산업단지를 형성했었습니다. 대전이 산업화도시로 발전하는데 기반이 된 곳이 바로 이 동네입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 당시 관사, 100년 된 전봇대, 다다미방 등이 보존되어 있는 이곳을 지키고 보존하고 싶습니다. 철공소 사장님들과 공동체를 만들고, 4년간 철 문화 공동체 문화예술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힘을 모아야 하듯이, 한 마을을 키우려면 지역이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 앞으로 계획은.

원동과 정동이 사라지면 대전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중앙시장 르네상스 사업, 인동 쌀시장(만세장터), 천동 알바우 고개의 스토리를 유지하면서 문화특구로 만들고 싶습니다.

나아가 공공미술 사업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이 살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도시재생에서 문화예술의 역할, 예술가의 역할을 찾아 공유하면서 후배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후배들과 함께 도시를 아름답게 바꾸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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