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코로나와
상태바
[다문화 사랑방] 코로나와
  • 선민화(중국)
  • 승인 2022.08.30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143)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 2020년 1월 18일. 아이들과 중국에 가는 비행기를 탔다.

3년 만에 친정집에 가는 거니까 빨리 부모님과 만나는 생각만 했었는데 중국 우한에서 세계적인 재난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공항과 기차역에서 선물을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귀향객들이 가득했다. 중국 가장 큰 명절 - 설날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설 연휴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타졌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우한에서 막지 못한 죽음이 계속되면서 결국 방역 때문에 도시 우한을 봉쇄했다. 그러나 우한은 중국 9개 성으로 통하는 교통요충지라서 “봉쇄령”이 내려도 이미 많은 귀향객 우한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공황에 빠졌다.

내 고향은 우한에서 멀어서 처음에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이 나빠지자 여기저기 지역 다 봉쇄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마스크나 약이나 미친 듯이 사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도 집에서 설을 힘들게 보냈다.

그러고 어느 아침에 핸드폰에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가 취소됐다는 문자였다. 완전 날벼락이었다! 남편과 연락해서 다시 비행기 날짜를 잡았는데 다음날도 취소됐다.

다시 한국에 못 가 우리 남편을 못 만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모처럼 아이들과 중국에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 돼 버려서 무척 슬펐다. 나는 한국에 빨리 돌아와야 하는 마음을 먹고 친척의 도움으로 한국에 오는 마지막 비행기를 예약했다. 공항은 다른 도시에 있으니 나는 아이들과 마스크를 꼼꼼히 착용하고 비행기 꼭 기다려준다는 기도를 하며 기차를 탔다.

다른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니까 온라인으로 미리 호텔 예약했는데 도착해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이 도시의 모든 호텔이 다 문을 닫은 상태이었고 봉쇄령 때문에 여행회사들도 호텔 예약한 손님들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알게 되었다. 그때 밤 12시 넘었는데 아이들과 잘 곳 없어 당황하고 무서웠다. 다행히 택시 기사님 도움으로 공항 근처에 여행객들을 위한 쉼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집에 왔다는 생각이 안심됐다. 남편이 있는 한국은 바로 내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코로나 터지고 나서 나와 우리 아이들은 자가격리 총 4번이나 걸렸다. 중국에서 한 번 했고 한국에 들어와서 3번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첫 번째 격리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 아시다시피 코로나의 시작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 사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컸다. 나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자발적으로 코로나 검사와 자가격리를 했다. 그런데 격리 중 걸려온 아이 학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너무 속상했다. 어떤 학생 엄마들이 우리 아이가 학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격리 끝나면 학교에 가도 된다는 말 위로가 되고 나는 반역 수칙 더 잘 준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바꾸었다. 아이들이 학교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놀 수 없게 되었다. 옛날에 시끌벅적했던 놀이터도 조용하고 아이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식은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1학년 대부분 시간은 집에서 보냈다. 지금은 2학년이지만 가끔 1학년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

보통 중학생이 되어야 부모와 같이 안 다닌다고 들었는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같이 밖으로 안 나가려고 합니다. 게다가 공부 때문에 다투는 날 많아져서 정말 걱정된다. 온라인 수업은 아이들에게 흥미가 없어 같이 공부하는 데 점점 힘들어졌다. 한국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교과서 내용은 너무 어렵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우울증이 생신 것 같다. 아이들과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집안일 더 많이 생기니까 짜증이 자주 난다.

얼마 전에 친정 아빠가 심혈관 문제 때문에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하고 계시지만 가 보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아마 멀리 시집을 온 친구들 다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 끝나기 전에 고향에 다시 못 갈 것이다. 정말 두렵다.

코로나는 우리 함께 넘어야 하는 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을 맞고 비행기가 자유롭게 하늘에 뜰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뉴스에서 외국 노동자들도 많이 걸린다고 해서 가슴이 아팠다. 외국에서 아프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백신 1차 접종한 후에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처음에 부작용이 많아 죽음까지 일으킨다는 뉴스를 듣고 코로나 백신을 안 맞겠다고 생각했는데 친정 아빠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것이 깨달았다.

내 한국 가족도 걱정하지만 중국에 있는 가족도 걱정한다.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은 급하지만 갈 길이 막혀서 답답하다.

나는 가족과 이야깃거리를 만들 겸 한국어도 배울 겸 해서 뉴스를 보는 습관이 있다. 요즘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을 자주 봤다. 코로나 장기화가 되면서 이제 코로나를 예방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이 사는 것을 너무 무서운데 코로나를 이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적극적으로 예방접종을 하고 방역수칙을 잘 따르면 마스크를 벗는 날이 빨리 오지 않을까?

나는 코로나가 하루빨리 역사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가족과 함께 자유롭게 만나는 날이 꼭 올 거라고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