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나의 한국 일상 생활
상태바
[다문화 사랑방] 나의 한국 일상 생활
  • 김효주(필리핀)
  • 승인 2022.09.06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144)

안녕하세요!

필리핀에서 온 아이비라고 합니다. 한국 이름은 김효주입니다.

2007년 4월 1일날 한국에 왔습니다. 이제 14년이나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하나도 모르고 의사소통을 많이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가구에서 모든 시댁식구가 같이 살았습니다. 1층은 시어머니와 큰형님과 큰아주버님께 사시고 2층은 남편과 저랑 살고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는 아래층 시어머니계신 곳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남편은 아침마다 회사에 출근하고 큰아주버님도 출근합니다. 큰형님은 친구네 집에 가서 놀거나 아니면 시장가서 쇼핑을 갑니다. 가끔 큰형님이랑 같이 장을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근데 많은 시간은 시어머니랑 같이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한국어로 공부를 했습니다. 밤새도록 까지 반복해서 공부를 합니다. 제가 모르는 한국말이 많아서 남편한테 물어봅니다. 물어볼 때 항상 싸웠고 오해를 많이 했습니다. 의사소통도 안 됩니다. 가끔씩 큰아주버님께 물어보면 제 마음이 편합니다.

일년 넘게 싸웠었습니다. 저는 맨날 울었습니다. 미국에 계시는 우리 엄마한테 맨날 전화해서 울고 엄마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맨날 집에만 있고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갈 곳도 없고 친구도 없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남편 가족, 친척, 친구, 동료 그리고 아는 분들을 저녁이나 밤에 만나서 인사를 나눕니다.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고 이해도 못 했습니다.

그냥 웃는 소리가 나오면 웃고 심각한 이야기를 들으면 눈으로만 쳐다봅니다. 정말 무슨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했습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멀리 있는 가족이 정말 그리웠습니다.

어느 날 서랍장에 우리 결혼할 때 받은 돈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은 통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아래층에 내려가 큰형님에게 통장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형님이 깜짝 놀라 바로 남편한테 전화해 물었습니다.

그날 큰아주버님과 남편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큰아주버님께 저에게 돈이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큰아주버님 돈, 큰형님 돈, 남편 돈을 다 필요 없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큰아주버님이 일하고 싶으면 먼저 한국말을 배워야 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 속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큰아주버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시어머님께서 5만원을 주시며 “통장을 만들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형님이랑 저랑 은행을 가서 그 5만원을 가지고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집에 다시 들어오면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6개월 후에 결단했습니다.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서 일을 빨리 찾을 수 있다고 제 가슴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침, 점심, 오후, 저녁, 밤새도록까지 반복해서 열심히 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화장실에서도 거울 앞에서 많은 연습을 했습니다. 매일 매일 공부를 했습니다. 역사 드라마도 항상 TV를 보았습니다. 계속 싸우니까 더 답답했습니다.

그게 1년 반을 계속 싸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아침마다 밖에서 교차로를 들고 집에 가서 일자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연락해보았습니다. 100번 이상 전화했더니 원어민 선생님 필요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일하고 싶다!” “도와주세요” 라는 말은 계속 하면서.

그렇게 몇 개월을 찾고 기다리다가 우리 옆집에 초등학생 아이를 영어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얼마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근데 큰형님이 “돈을 안 줘도 된다” 그래서 무료로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는 학원을 소개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1주일 한번 가르쳤습니다. 첫 일이 생기면서 얼마나 기뻐할지 모르겠습니다.

교차로에 하도 많이 봐서 어느 어학원이 영어 강사가 필요하다 해서 신랑과 제가 원장님이랑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주에 시작한다 했습니다.

괴정동 지앤비 어학원을 더 일 시작했습니다. 그 원장님이 다른 지앤비 어학권도 소개를 했습니다. 1주일에 3군대까지 지엔비 어학원을 다녔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고 방과후 선생님도 해보았습니다. 일이 많아지니까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산내 가서 운전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접수만 했습니다. 책도 샀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운전면허증 따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운전면허증 책을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드디어 운전 시험을 합격했습니다. 남편이 중고차를 샀습니다. 일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2015년에 문화초등학교에서 연락을 왔습니다. 그때 방과 후에 영어를 가르쳤을때 누군가 제 연락처를 다른 분한테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영어 방과후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 동해서 많은 소개를 받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 열심히 영어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더 열심히 더 열심히 하자!

그때 월급 받고 필리핀 있는 동생한테 용돈을 보냅니다. 엄마와 동생들을 얼마나 보고 싶었습니다. 필리핀과 미국에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돈은 부족하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 몇 개월 과외비를 챙겨서 딸과 아들과 저랑 미국에 갔습니다. 막내 아들은 아빠랑 같이 있었습니다. 9년만에 우리 엄마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보고싶었을까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날 너무 행복했습니다. 3주동안 미국에서 즐거웠습니다.

다시 한국에 와서 일이 다시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다시 미국으로 가고싶다. 아침부터 수업을 시작하고 밤새도록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매일 매일 피곤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이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는데. 자기 몸은 점점 이상해졌습니다. 자꾸 넘어져서 걱정됩니다. 시어머니 돌아가시는 후에 큰형님들이랑 상의해서 남편이 점점 몸이 나쁘다고 해서 병원에서 한번 검사받아야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이 검사 안 하고 제가 한번 받아보고 하니까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진단을 받았습니다. ALD(부신 대뇌백질 위 축증)라고 있는 병이었습니다. 무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2013년이었습니다. 남편이 일을 못하니까 우리는 이제 수급자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혼자 돈을 벌었습니다. 학원을 세 군데 다니고 과외도 합니다. 많이 힘들지만 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려면 많은 돈을 필요합니다.

제가 하루종일 밖에 나와서 일 열심히 돈 법니다. 남편은 정부에서 매월 돈을 나옵니다. 혜택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일을 해야 돈을 나옵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만합니다.

맨날 이런 생각합니다. 세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자격이 없는 엄마 만나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진짜 힘들었습니다. 멀리 있는 나라에 와서 고향에도 못 가고 엄마도 못 보고 참 어떻게 재미있게 살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혼자하는 생각은 “그냥 잊자!” “열심히 살자!” “아이들한테 잘 해야겠다!”. 쉬지 않고 열심히 돈벌어서 그때 5백만원 정도 모았습니다. 은행에서 적금 많이 해놨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점점 빼냈습니다.

그리고 일이 많아지니까 몸이 약해지고 스트레스도 받습니다. 2016년에 몸이 아프게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밤새도록 까지 매일 매일 일하면서 식사도 못 하고 일만했으니까 몸이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2017년에 필리핀에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른 일이 찾으려고 했습니다. 거기서 네트워크 마케팅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7개 분야를 가지고 있어서 1년동안 필리핀에서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8년 2월 달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같은 회사와 통신과 쇼핑몰과 영어교육 사업을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네트워크마케팅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필리핀 사업했을 때 제가 벌었던 돈을 썼습니다. 학원을 안 다니니까 인맥도 없어졌습니다. 과외했던 분들도 연락을 없어졌습니다. 수입도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연락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혹시나 영어 배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연락주세요” 라고 아님 “한 명 만 소개해주세요” 라고 부탁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일을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동사무소에 가서 일자리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자활센터에서 2달 동안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개월 기다리다가 제가 아는 선생님 통해서 어린이집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 2월부터 어린이집에서 일을 시작했고 과외도 몇 명 생겼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1년 동안 일하다가 갑자기 한국에 엄청난 병을 들어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일이 멈췄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외부 강사들은 수업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일 년동안 일을 못했습니다. 과외하던 사람들도 그만두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병입니다.

매일 매일 고민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 되지? 아이들한테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사야지? 먹을 거, 입을 거, 교육비,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코로나 없어지겠지, 다시 일 시작할거야, 다시 일 찾을 거야, 늘 긍정적인 생각하면서 삽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혼자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일 찾기를 힘들어서 여기저기 생각하고 뭐해야 되나, 무슨 일 해야 되나. 매일 나의 자신을 묻습니다. 답이 안 나오니까 답답합니다. 아이들이나, 학생이나, 성인이나 생기면 좋은데 사람 모집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단지를 붙이고 시작합니다. 오후나 저녁엔 시간 날 때마다 붙입니다. 버스 정류장, 아파트, 주택 그리고 빌라. 몇 개월동안 연락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문의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붙였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가르치는 아이들과 성인도 다시 한번 연락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영어 배우고 싶은 사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울었습니다. 죽고 싶었고 자살도 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죽겠다” 라고 말합니다. 항상 이런 생각만 더 올립니다. 내 인생은 이런건가, 내 삶은 이런건가, 내 팔자는 이런건가 답이 안 나옵니다. 아무리 제 자신에게 질문해도 답이 없습니다. 제가 밖에 나가서 일해야 되고 남편은 24시간 하루종일 집에서만 있고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바둑도 치고, 핸드폰을 보고 유튜브를 봅니다.

자기 생활을 이겁니다. 하루 하루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2021년 1월부터 정말 다시 미치게 전단지를 붙였고 아는 분들도 찾아가서 모르는 사람한테도 다가오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컴퓨터 숍 언니가 자기 남편 친구가 영어 선생님 필요하다고 해서 만나보았습니다. 어린이집에서 20분의 데모 수업했습니다. 그분이 대전에서 어린이집을 많이 운영하고 있어서 시간만 맞추면 어느 어린이집인지 수업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2021년 3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 3군데 어린이집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외도 몇명 늘었습니다. 지금 일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은 아침에 부동산 사무실에서 몇 개월 동안 근무했습니다. 오후 12시 반이 되면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어린이집 3군데 1주일 4번 다니고 있습니다. 1시간이나 2시간씩. 끝나고 과외를 합니다.

나머지 요일은 내가 갖고 있는 수강생들을 관리를 합니다. 직접 자기 내 집으로 방문합니다, 저녁은 사무실에 강의 들어야 되고 어느때는 제 강의도 있습니다. 밤에는 관리 하는 수강생도 있습니다.

음식 배달도 합니다. 제 일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합니다. 진짜 아이들 노는 시간에도 없습니다. 집안일을 제가 다 합니다. 장보러 가는 것도 제가 혼자 합니다. 제가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줍니다. 어떤 행사 있으면 제가 항상 혼자 갑니다. 학부모 상담도 제가 합니다. 아이들을 아파도 제가 병원에 데려다주고 갑니다. 어떤 활동 있으면 제가 혼자 합니다. 모든 것은 제가 혼자합니다. 엄마 아빠 역할은 다 합니다.

저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어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까지, 아이들이 예쁘게 잘 키웠고, 일도 열심히 잘 했고 한국 생활도 열심히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혼자 움직이고 혼자 역할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꿈은 많은데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랑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모으는 돈을 없지만 기회 되면 열심히 돈 벌어서 아이들이랑 조용하게 살고싶고, 돈도 걱정 없이 살고싶고 아이들 원하는 것도 필요한것 다 해주고 싶습니다. 멋진 엄마 되고 싶고 그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아이들 보고 삽니다. 아이들 덕분에 삽니다.

저는 많은 꿈은 있습니다. 아이들 위해서 이 꿈을 반드시 이루어 줄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