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북도능전지 저술한 '장흥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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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북도능전지 저술한 '장흥위씨'
  • 조연경 기자
  • 승인 2022.09.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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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위씨 선조들의 유서 깊은 역사를 바탕으로 세련되게 재구성한 작품이며 전체적 형태는 한글 ‘위’자를 모태로 직선과 곡선의 통일된 조화 속에 문중의 화합을 의미하며 우측의 기둥은 문중의 비상을, 상단의 원은 충효의 정신과 문중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장흥 위씨의 시조는 회주군 휘경이다. 공은 당나라 한림학사로 638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7년에 도예지사로 동래하여 벼슬이 아찬에 이르렀으며 고려 때 회주군으로 추봉 되니 회주는 곧 장흥이다. 그러나 약 300년간의 세계 실전으로 고려 초기 대각관 창주를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잇고 있다.

5세 계정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선종·숙종·예종 등 4조에서 삼중대광,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시중, 판이부사, 상주국 등을 역임했다. 타계하자 충렬 시호와 함께 예종묘정에 배향됐다. 또한 고려 고종 때 원개·문개·신개 3형제는 예부시에 장원급제하고, 원개는 한림학사 추밀원부사로 활동하다 출가, 정혜사에 있을 때 원나라 황제에게 청전표를 올려 송광사의 징발된 토지를 회복시켰다.

그가 입적하자 충렬왕은 원감국사 시호를 내렸다. 조선조에서는 합문판사였던 충이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불복하였다. 하여 출사자가 200년간 없었으나 그 후부터는 문·무과 급제자가 배출되고, 특히 임진 및 병자 양란에는 호남모곡도유사 대용은 형조참의에, 덕의도 병조참의에 추증, 해남현감 대기는 호서수군절도사에, 언양현감 덕화는 호조판서에 의주부윤 한량, 북도능전지를 저술한 창조는 호조참의 등 무공이 지대하다. 또한 호남 실학의 거목, 옥과현감 백규는 9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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