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와 폭풍우는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익어가라고, 깊어지라고,
가을 햇살이 가만가만 나를 어루만진다.
어느 시인의 글입니다. 벌써 9월도 중순입니다. 이제 김장용 배추나 무를 제외하고 올 농사의 결말을 짓는 추수의 계절입니다. 올해 이상 기후가 유독 많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더욱 소중합니다.
올 농사는 기대보다 못하여 실망하였습니다. 제일 마음 쓰인 것은 고추였습니다. 알고서 당한 것 같습니다. 내 게으른 탓만은 절대 아닙니다.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추신수가 활약했을 때 그의 타율은 얼마였을까요? 2할 5푼 정도입니다. 아주 유명한 선수도 3할 대가 안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7할 이상이 실패입니다. 야구는 실패가 일반적이고, 실수가 경기의 일부입니다. 인간끼리 하는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농사는 하늘과 공동으로 합니다. 하늘이 7할 이상을 책임 짓는 것이기에 실패가 일반적입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노력만큼 얻지 못하는 분야입니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자연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노력은 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편합니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건가요? (······)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요.
제가 좋아하는 그리스 문호 카잔차키스(1883-1957)의 대표작 《희랍인 조르바》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먹물 먹은 지식인들은 옳고 그름이나 결과의 많고 적음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것조차 재보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조르바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이 가을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면서 순간의 기쁨을 누렸으면 합니다. 가을은 가을뿐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마음이 있기에 가을은 우리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가을은 저기 노랗게 들녘에 벌써 와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