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떠나는 고향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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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떠나는 고향 친구에게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적조사 주지)
  • 승인 2022.10.05 09: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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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를 보내며

가을밤 빗소리가 한여름의 소낙비처럼 거세고 예사롭지 않은데,
또 다시 난 우울 모드일 수 밖에 없구나,
되도록이면 고향과 한참을 멀어지려고 경주의 강의를 핑계삼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더 내려가려 하다가,
밤은 깊어지고 무거운 마음도 주체할 수가 없어 안동의 어느 한 곳에서 끊이지 않는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네

불알 친구이자 어릴적 함께 놀던 김재도가 간암으로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우리 외할머니의 친정 조카에게 시집을 온 이모를 두어서 나와는 먼 사돈뻘 이기도 하였고 철부지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재도를 조문하고는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곳에서 난데 없이 맞이하는 이른 새벽이다

지금쯤 고향의 친구들은 이젠 영영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바삐 떠나려는 재도를 보내려고 어제 늦도록 마신 소주로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는 빗속에서 발인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들 움직이리라

재도는 면소재지 동부택시집 아들이었다
쌍이리, 중리, 다락골, 구방리, 용곡 등 면소재지에서 한 시간쯤을 넘게 걸어야 했던 산촌의 아이들에게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도 면소재지 문방구집 아들이어서 피노키오 연필만 썻지만,
재도는 비록 벽촌 우시장터 촌구석이었어도 택시회사 창업주를 아버지로 두었으니 학용품도 늘 삐까번쩍으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편이었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약간 절었지만,
인정이 있어서 언제나 여러 친구들에게 수시로 밥을 사주는 일이 빈번하였다
이제 그만함 미인인 아내도 얻었으며 아이들도 다 성장하였는데, 무엇이 그리도 급하였는지, 어린시절의 여전했던 급한 성미로 말까지 더듬더니만, 그 조급증을 버리지 못해서인지 황천길도 맨 앞장을 서 간다
아마 재도 또한 고독한 잔나비띠일터이니 겨우 50대 중반쯤에 서둘러서 세상을 참 고속으로 하직을 하는구나

재도의 나와바리인 장터거리는 다방이 즐비하고 요릿집에는 젊은 여급을 두어야 영업이 번성하는 시장통이어서 돈을 물쓰듯 하던 재도에게는 딱 안성맞춤이었고, 유흥에 조예가 있거나 일찍 눈을 뜬 발랑까진 친구들에게는 늘 호구였던 재도였다
그에게 늘 삥을 뜯으며 괴롭히던 놈들도 여럿이었지만,
물론 나도 몇차례 막걸리도 얻어 먹었을 것이며
파란만장한 애기 건달 시절에는
어른 흉내를 낸다고 집고땡 인가, 섯다며, 고스톱, 바둑이 카드 놀이로 제법 큰 노름도 하고 수시로 술추렴 하며 허송세월도 보낸 바,
여름날의 매미같은 시절은 어느 덧 눈 깜짝할 사이였고,
곧 생활고가 닥쳐 올 것은 뻔한 이치였으나,
재도는 착하고 늘 어질어서였는지
친구들에게 언제나 당하는 편이었고
영원한 호구 아니 영원한 천사였는데,

용인을 떠나려던 어느 해 초파일 며칠전 내가 새텃말 김문구하고 거나하게 한 잔을 쏘아대던 그 무렵 그 때쯤 이미 선친에게서 물려 받은 동부택시는 다 날려 남의 명의가 되고 형편도 어려워져서 남의 회사택시를 끌며 근근히 생활을 하던 처지였는데,
꼬깃 꼬깃한 일금 오만원을 챙겨 주기도 했던 인간미있는 그런 친구 였는데,
이 빗속에서 서둘러 가야 한다니
애처로운 맘에 가슴 한구석 애잔한 아픔이 저며온다

재도야 비오는 저승길에 비나 좀 그치걸랑 가던지,
가는 길에 주막이 보이거든 탁배기나 한잔하고 쉬엄쉬엄 느릿 느릿한 소걸음으로 가게나
예전에 멱을 감던 개천이며
장터거리에서 밥보다 술을 좋아해서 어릴 적 먼저 떠나간 경배, 석권이하고 함께 소주를 마시던 실비집도 들러서 거나하게 한 잔하고는 올갱이국으로 해장도 하고 아주 서서히 천천히 떠나게나

이 빗소리에 마시는 소주는 얼마나 달겠나?
새벽 빗소리에 깨어서 이 잡문으로 하직 인사를 대체하려니 이 친구 무정하다고 탓하지는 말게나

친구야
그런데 너를 안타까이 보내려 하는데,
이 빗소리 너무도 줄기차고 장엄하기 조차하네 그려

재도야 이 세상에 나와서
누군가를 아끼고 함께 한다는 일은 들판에 곡식이 무르익기를 기다려서 바람에도 곁가지를 내어주듯이 언제나 항상 꾹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아닐까?
자네는 자네의 가족을 그토록 절절히 사랑했음으로 너의 인생 그만함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함도 없이 행복하였네라
남아있는 친구들도 언젠가 육신은 너덜거리고 사그라들어 목숨을 여읠 때에는 지나간 먼 유년의 시간 한 자락 떠올리며 너와 함께 했던 작은 기억 하나가 아스라이 품어지겠지
그때에는 산으로 들로 천방지축 뛰어 놀던 그 옛날의 동산을 눈물겹게 그리워 하리라
친구야 누군가를 남기고 떠나는 그 허전한 마음 말할 수 없는 미련이 왜 없겠느냐?

저승에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의 각시며 아이들을 잘 보살피게나
이젠 마지막 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네

잘가게나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적조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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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태 2022-10-05 15:05:46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항상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미소천사 2022-10-05 11:44:23
맘이 짠하네요
~~저세상에서는 아프지 않는 그런곳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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