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내 아이의 학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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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내 아이의 학교생활
  • 박승월(중국)
  • 승인 2022.10.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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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149)

 

높아지는 푸른 하늘과 무르익어가는 과일, 황금빛의 오곡으로 뒤덥힌 가을이 왔습니다. 저도 캐리어에 간단히 갈아입을 옷 두어 벌만 챙겨 가지고 저의 부모님의 고국, 우리 선조가 살던 그곳으로 떠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이라는 땅을 밟은 지 벌써 10년이 다되어가고 있습니다.

저 무르익어가는 과일, 풍년이 가득한 황금빛 오곡을 보면서 저의 10년의 한국생활의 수확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저도 수많은 사람들처럼 타국, 타향인 이곳에서 매일 해가 뜨면 일터로 나가고 해지는 저녁에 고된 몸으로 귀가하는 외국인 '근로자' 입니다. 여느 부모와 다름없이 사랑하는 가족, 자식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공부 할 수 있게 해주려고 눈 코 뜰새 없이 일만 해왔습니다.

어느덧 어린이집에서 과외로 한글을 조금 배워서 겨우 읽기만 하며 한국으로 입국한 우리 딸 지영이가 중2 랍니다.

그해 겨울 부모 찾아 한국으로 왔던 딸님이 귀국해야 할 날이 다가오자 울면서 하는 말이중국가지 말고 엄마람 같이 살면 안돼요?....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서른 살 넘어 귀하게 얻은 딸 욕 한마디 안하고 곱게 곱게 키워온 딸이 울면서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 해졌습니다.

좋은 환경 좋은 학교 보내주고 싶어서 보내려는 것이였는데...그 순간 아이는 좋은 환경보다 부모가 함께 해주는 것을 더 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학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때 벌써 2월 23일이 되었고 개학이 5일밖에 안 남았었습니다.… 개학은 코앞으로 다가오는데 가야 할 학교에 필요한 서류는 하나도 준비된 게 없었습니다. 무조건 집 근처 학교로 찾아 떠났어야 했습니다.

개학전이라 교무실에는 아무도 있으면 상담이라도 하겠는데.. 라고 할 때 교장실에서도 안계셨습니다. 이걸 어쩌나... 누구라인기척이 들렸습니다. 급한 마음에 그냥 노크만하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말씀드려봤습니다. 죄송한데요. 저는 중국 교포예요. 아이 공부시키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우리 아이 공부 좀 시켜주세요. 저 직장 열심히 다니고 있고 4대보험도 가입했고 주소지도 여기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하고 공손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자상하게 웃으시면서 잘 찾아오셨습니다. 외국 국적아이도 교육 받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신분증 주소지만 여기로 되어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외국인 자녀분들에게 제일 걱정인 것이 대화인데 한국말은 좀 하세요? 하고 물어보셨습니다. 한국 입국 전부터 한글은 이미 배워왔기 때문에 교장선생님 말씀에 아이가 바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옆에 있는 서류를 펼치시고 볼펜으로 한곳을 가리키신 후 천천히 읽어봐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아이는 서류를 보고 바로 또박또박 글을 읽어갔습니다. 글을 읽어가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보시고 교장선생님께서는 너무 놀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한글을 알게 되었고 여기서 왜 공부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순간 교장선생님께서는 너무 감탄하셨습니다.외국에 계신 동포분들도 우리나라 말을 잊지 않으시려고 아이를 이 정도까지 가르치신다니 대단하십니다. 오늘 교무실 선생님들께선 외출하셨으니 내일 오전 10시까지 오셔서 입학서류 받아가세요. 한글도 알고 말도 잘하는데 학교생활 잘 적응하리라 믿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말만 반복하고 나왔습니다. 진짜 너무 친절하시고 고마우셔서 그때 그 심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분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 하려면 최소 3개월 전부터 서류준비하고 예비소집당일은 아침 새벽부터 아이와 함께 줄을 서야합니다. 물론 돈도 많이 들어가고 말이죠. 다음날 교장선생님의 말씀대로 순조롭게 별 탈 없이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쭉 공부도하고 좋아하는 방과 후 수업인 밸리 댄스, 가야금, 요리교실 등등 여러 가지를 배우고 즐겨가면서 한국 아이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쯤 이었습니다. 그날 체육대회를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이 그랬습니다.엄마 나 빨리 달린다고 체육선생님께서 운동선수 시켜주신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유니폼 입어보고 싶어. 이미 선수된 친구들도 있어.”

저는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원 없이 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운동만은... 저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여름에는 배구, 겨울에는 스케이트선수로 많은 대회도 나가고 수없이 상도 받아 봤습니다. 운동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건지 너무 잘 알기에 딸만은 운동을 안했으면 했습니다. 예쁘게 공주처럼 공부하고 즐기면서 살기만을 바랬습니다.

한편 환절기만 되면 면역력 저하로 감기, 기침 때문에 일 년에 두 번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운동하면 면역력은 키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1년만 해보자고 했습니다. 면역력 키워서 감기 안 걸리고 공부도 계속 잘하는 걸로 약속받고 티볼, 소프트볼 선수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업하는 시간만 빼고 새벽 6시 반부터 해 넘어 갈 때까지 고강도 훈련을 했습니다. 운동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아파서 뜨거운 물에 찜질도 하고 마사지도 해줘야 잘 수 있었지만그만 할래” 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힘든 훈련을 받았었기 때문에 너무 가엾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선수의 길은 수많은 땀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미로 하다 힘들면 그만두겠지 했는데 훈련을 받기 시작 한 후 두 달 뒤 천안시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회하는 날 저와 아이 아빠가 응원 해주려고 시합을 참관했습니다.

경기장에 있는 딸은 집에 있던 모습과 달리 침착하게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고 잽싸게 달려서 아슬아슬하게 세이브를 하고 다음 베이스로도 진루했습니다. 평소에 우리 아이보다 공을 잘 잡던 아이들도 긴장해서 그런지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시내 1등하리라 자신만만하던 아이들이 울쌍이 되어 버렸습니다. 체육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안정시키려고 좋은 말씀도 많이 했지만 다음 경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의 실수는 반복 되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높은 소리로 우리 지영이 제일 침착하지, 지영이 침착하게 잘 받는 걸 봐, 너희들도 잘할 수 있어 힘내.격려에 위안이 됐는지 아이들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더니 순간 점수가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날 경기 도 1등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 대회, 도 대회 마지막 전국대회까지 계속 우승을 하여 금메달을 받아왔습니다.

저는 그런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운동 시작한 후로 부터는 감기 때문에 입원할 일은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철없는 아이지만 경기장에서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공을 잘 받아서 선생님과 친구들한테도 인기짱 이랍니다.

힘들어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에 아이의 빛나는 이 시절을 함께 해준 게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저의 인생에 제일 큰 수확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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