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고려 개국공신 이능희 '청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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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고려 개국공신 이능희 '청주이씨'
  • 조연경 기자
  • 승인 2022.10.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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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상단에는 등불·해·일출·사람의 조형적 형태를 새겨 영원한 생명의 등불처럼 꺼지지 않고 자손의 영원한 번창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부여하였고, 중앙에는 사각기둥 두 개를 세워 한국의 건축 양식과 처마선 형태를 좌우측에 세워 한국적인 미를 가미하였다. 본 작품은 현대적인 미를 수직적 구도로 구상하여 먼 거리에서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청주이씨 가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청주이씨는 시조 태사 이능희공이 고려 개국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고 성을 받은 이래 6세 중서시랑평장사 공승에 이르러 크게 빛났다.

공승의 큰 아들 춘로는 참지정사였고 둘째 아들 계장은 문하시랑동평장사였다. 그 이후로 현상양좌가 배출되어 고려 말에 9세 창우의 큰 아들 계감은 낭성군에 봉해졌고, 둘째 아들 차감은 개성 이씨로 분관했고, 셋째 아들 계성은 보은백에 봉해졌다. 계감의 큰 아들 정은 서원백 문간공이었고, 둘째 아들 방직은 진현관 대제학이었다. 계성의 큰 아들 송고는 판도판서였고 둘째 아들 방고는 행중낭장 판도판서였다.

정의 큰 아들 유신은 형부낭중이었고, 둘째 아들 거인은 검교좌정승 공절공이었고, 셋째 아들 거의는 공조전서였고, 넷째 아들 거이는 문하좌정승을 거쳐 영의정에 오르고 문도공이었다. 문도공의 큰 아들 상당군 애는 이태조의 부마였고, 넷째 아들 청평군 백강은 태종의 부마였다.

청주이씨는 지금까지 약 천백년 동안 수많은 명신, 충신, 효자, 학자 및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인재를 배출하여 국가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다. 특히 효종 연간에 족보를 매우 일찍 간행하여 숭조와 종족간 화합에 힘썼고, 현재 후손이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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