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나의 한국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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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나의 한국가족
  • 주이정(대만)
  • 승인 2022.10.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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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150)

“저는 이팅의 한국 엄마예요.”

언니는 항상 따뜻한 목소리로 나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며 옆에 같이 있는 친구에게 사진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에 잘 저장되어 있습니다.

2019년 9월 초가을이었습니다. 들떠있는 마음으로 교실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석사 과정으로 충남대학교에 입학하고 한국에 와서 들은 첫 수업이었습니다.

나는 혼자였습니다. 깜깜한 교실에서 나는 낡은 건물의 꿉꿉한 냄새, 일사불란하게 배열되어 있는 책상과 의자, 앞에 펼쳐있는 칠판. 나는 불을 켜고 그 모든 사물과 함께 10여 분간 고요한 공백 속에 있었습니다.

설렘이 불안으로 넘어갈 무렵 언니가 총총 걸어왔습니다. 한 칸 띈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여기가 XXX 수업 맞아요?” 하면서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순식간에 무장해제처럼 마음이 녹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내가 자연스레 언니 바로 옆자리로 옮겼고 이대로 우리는 영원한 짝꿍이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와 동갑이신 언니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항상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반가워합니다. 언니는 역시 언니의 이름처럼 달에서 온 천사입니다. 한국 사회 정서에 의하면 나이를 따지는 건 물론, 위아래의 보이지 않는 선도 뚜렷이 그어져 있는데 나와 언니 사이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마치 진짜 엄마와 딸처럼, 엄마에게 하소연하거나 기쁨을 나누듯 언니에게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저는 늘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입니다.

한국에 있어도 긴급상황에 놓여 있을 때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후원군이 있다는 느낌이 정말 든든하고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게 나는 올 추석도 혼자가 아닌 언니가 미리 준비해 주신 사랑의 게맛살, 사과, 배를 먹으면서 달을 구경하며 언니에게 한가위 안부를 전하게 됩니다.

2. “엉, 이정아, 나 아빠야.”

작년 설 때 친구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막연하게 텅 비어 있던 마음이 확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벅차서 눈물까지 눈꼬리에 내릴락 말락 했습니다.

4년 전에 아빠를 잃은 후부터 처음으로 ‘ 아빠’라는 말이 다시 내 귀에 울린 것이었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워 갑자기 말을 잃었습니다. 반응이 없는 나를 느끼셨는지 바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당시의 나는 그 감격에 젖어 있어서 어떤 말이 흘러갔는지 사실 한마디로 몰랐습니다. 한 10초 후에야 정신을 차렸던 것 같습니다. 결국엔 설 때 집에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친구는 2017년 교환학생 시절에 전북대학교에서 만나게 된 군산 친구입니다. 친구 떡에 한국에서 가족이라는 집이 생겼습니다.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는 그런 집.

그때도 오늘처럼 추석이었는데 군산에 가서 친구 가족들과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후 중간에 대만에 갔다 온 해를 빼고는 2019년, 2020년, 2021년 추석도 마찬가지로 친구네서 보냈습니다. 친구네 집에 드나드는 날이 많아지면서 할머니, 큰고모, 작은고모, 고모부, 사촌 동생, 친구 아빠의 배트민턴 동호회 친구, 살구( dog)...친척은 물론 친구의 친구, 심지어 아빠의 친구까지 나라는 대만 여학생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갈 때마다 내 한국 가족이 한 명 더 추가되는 것 같았습니다.

올 추석은 터키 친구를 데리고 친구 집에 방문했습니다. 평소처럼 친구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는데 터키 친구가 “한국에 와서 집밥이 처음인 것 같아요.”라고 하여 모두들 의아해했습니다.

나에게도 충격이 컸습니다. 그 친구가 분명히 나처럼 친구도 많고 발도 넓은데 친구 집에 놀러가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닐 텐데 집밥을 어떻게 처음 먹어 보는 일이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반찬들을 보고 이런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맞다, 내가 너무 익숙해서 지금 누리고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올 추석 친숙감이 다시금 감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 “저는 외롭지 않아요.”

누구보다도 이 말을 씩씩하고 다양하게 외칠 자신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한국 가족’이 있으니까요. 고향에 돌아갈 때나 전화 너머 대만 가족이나 친구와 얘기할 때 항상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너 심심하지?” “많이 외롭지” 등.. 하지만 미안하게도 저는 항상 마음속에서 이런 위로는 사양하였습니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말입니다.

나는 한국 엄마, 한국 아빠, 한국 친구들 덕분에 외로워 할 일이 극히 드물어요. 외로워 할 겨를이 없달까? 채워지게 된 교실의 허무함과 채워진 마음속의 막연함처럼.

내가 즐겁고 열정 있게 한국의 모들 걸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 나의 코리아 패밀리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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