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고려태조의 통일대업을 크게 도운 '죽산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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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고려태조의 통일대업을 크게 도운 '죽산박씨'
  • 조연경 기자
  • 승인 2022.11.0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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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박씨 유래중 “우리문중의 가보로는 청백뿐이니”라는 구절이 있다. 본 작품은 죽산박씨를 의미하는 대나무를 모태로 청백의 의미를 담아 현대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대나무는 절개를 뜻하고 은은한 달빛은 선비사상을 의미하며, 전체적인 형태는 비대칭적 조화 속에 곡선의 부드러움과 직선의 강인함을 표현하여 문중의 고귀함을 담은 작품이다.

무릇 모든 박씨는 신라 시조왕 혁거세를 시조로 하는 씨족으로 세칭 신라박씨로서 신라박씨 만파일원이라 하여 시조대왕의 능호에 따라 오릉보존회를 조직하고 있다.

박씨 관적은 신라 제54대 경명왕(29세)의 9자 중 8대군파와 제9자의 국상공파 및 제55대 경애왕(29세)의 자 계림대군파를 관적 분파의 근원으로 삼고, 거기서 다시 여러 관적이 파생하여 현존하는 관향은 70여 본에 달한다. 죽산박씨는 상기 8대군파 중 제4대군 죽성대군휘 언립의 자 휘 기오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공께서는 고려태조의 통일대업을 크게 도우시어 ‘삼한벽상공신 태보 삼중대광’의 벼슬과 충정공의 시호를 제수 받았다.

고려는 공신들에게 식읍지를 하사하고 분봉하였는데, 공께서는 죽주를 식읍으로 하사 받으시고 죽주백으로 분봉되시매 계림(현 경주)으로부터 죽주로 이거하시니 후손들이 이 곳을 본향으로 삼게 되었다. 그 후 죽주가 죽산으로 개명되자 관향 역시 죽산으로 되었다. 죽산박씨는 문과급제 39인, 상신 2인, 공신 5인, 문형 2인. 호당 3인, 청백리 3인을 배출하여 문무대관들이 속출하였다. 문과급제수 39인은 박씨 중 다섯 번째이며, 상신 2인은 반남 박씨의 7인 다음으로 둘째이다. 상신 2인 한 분은 영의정 47세 문헌공 휘 원형으로 예종묘에 배향되셨으며, 다른 한 분은 좌의정 52세 휘 홍구이시다.

고려는 40세 철성백 휘 서 장군의 귀주대첩의 전공을 기려 후손들에게 음성과 고성을 식읍으로 하사함으로써 음성박씨와 고성박씨의 관적이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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