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 Moby Dick》이라는 장편소설에 해적처럼 생긴 에이해브라는 고래잡이 선장이 등장합니다. 그는 오로지 자기를 해친 흰고래를 죽이려는 복수심에 불타 있으며 열정적인 행동에는 증오와 광기가 있습니다. 선원들도 모비 딕에 대한 공포와 증오로 맹목적으로 하나가 되어 흰고래와 맞서 싸웠지만 포경선 피쿼드호 선원 전체는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습니다.

미치광이 선장과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유일한 인물은 1등 항해사 스타 벅(Starbuck)입니다. 그는 냉철하고 합리적 성격으로 매사 신중하게 처신하는 사람으로 진정한 용기는 아무런 겁도 없는 만용이 아니라 정당한 판단에서 나오는 신중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 정도로 몰입은 하지만 목숨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은 선장 에이해브의 폭주를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미국 시애틀에서 1971년 창업 당시 《모비 딕》에서 브랜드를 차용했습니다. 커피를 들면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나는 가끔 지역농협을 운영하면서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균형감각이 나의 영혼 속에서 제대로 결합되었나 의심합니다. 목적에 대하여는 열정적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적절한 방법에 대하여는 지혜를 모아 심사숙고를 하여야 합니다.

결국 흔히 말하는 중용(中庸)이란 생기 넘치는 영혼과 그것을 제어하고 길들이기에 적합한 인격을 가진 행동입니다.

금년도 달력 한 장을 남기고 있습니다. 각 농협에서는 내년도 사업 계획과 금년도 결산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사업 계획을 수립할 때는 열정과 의욕으로 채울 수 있지만, 그 계획을 실천할 때 신중하게 판단하여 실행에 옮겨져야 합니다. 더군다나 협동조합은 개인기업이 아니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조합원으로 구성된 결사체입니다.

조합장은 연초에 세운 투자계획을 연말까지 실행하지 못하고 미 실행으로 남길 때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못했을 때 끼칠 수 있는 피해가 잘 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이득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대담함과 신중함 사이의 균형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계를 인식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이 리더의 지혜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helep294@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