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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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적응
  • 트소이 베라(우즈베키스탄)
  • 승인 2022.12.20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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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159)

- 우리 만남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트소이 베라라고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3세입니다.

19년 전, 저는 운명의 짝을 만나 한국으로 왔습니다. 저는 모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 동안 일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꿈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집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었지 일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주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진 저에게 친척들이 어서 빨리 주부가 되라고 농담을 하면서 “대학교 가는 것은 필요 없어! 요리나 배우고, 빨래나 열심히 해! 그리고 집에서 청소만 잘하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결혼할 때 남편은 저에게 일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살이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믿을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남편은 약속대로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가정을 꾸리면서 아이 양육만 신경 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한국의 인생

결혼한 지 5개월 쯤 지나고 제가 임신 4개월 되었을 때,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아픈 몸으로 일할 수 없었고 치료비에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부모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식료품을 비롯하여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온 힘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수술 후, 남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회사에 다시 나갈 수 있었는데 저는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 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일을 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도 제가 돈을 벌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 보았지만, 그 때마다 남편은 화를 내면서 “당신 부모님께 일 안 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신이 일하면 내가 어떻게 당신의 부모님을 뵐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한국어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2000년 초, 대전에서는 한국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는 과외 선생님뿐이었습니다.

 

-노력이 있어야 좋은 결과는 나옴

처음에 딸에게 사주었던 40권의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들을 번역해가면서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듣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한국어를 잘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년 반 지나고 둘째 딸을 가졌습니다. 집에서 아이들 둘 키우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2005년 복지관에서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외국인 이주여성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매우 기뻤습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지만 누군가가 저를 몰아가면서 확인하고 가르쳐야 잘 따라가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공부를 잘하지 못 했습니다. 어쨌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부족한 어휘는 조금씩 보충되었습니다.

4년이 지나고 오래 기다렸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셋째 아이를 키우는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셋째 아이를 임신한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셋째 아이는 아들이라고 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남편이 일 때문에 힘들지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힘이 나고 열심히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몸이 아픈 남편을 제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못 했습니다.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을 때,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제가 열심히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두고 일하러 가면 아이들이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 사는 것이 너무 불쌍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때 혼자 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자, 그래서 저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2009년, 복지관에서 CA강사에 관한 수업이 개설되었습니다. 복지관의 한 직원이 저에게 CA강사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가게 수업에 도움 될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CA강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 동안 저는 열심히 배웠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나서 복지관의 추천 덕분에 약 6개월 동안 학교에서 일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자신감을 얻었고,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때 제게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몇 년이 지나고 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꿈이 하나 또 생겼습니다. 멋진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열심히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 만나고 여러 가지 필요하는 자격증들 땄습니다.

결국은 사회복지사 활동을 아직 못 하고 있지만 그 대신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문화이해교육 강사, 법원이나 경찰서에서 통역, 번역 하는 일, 공예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 날 때 봉사를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참 보람 있는 일입니다.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멈추지 않고 부지런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어떤 일을 시작한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아내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저를 항상 믿어 주시고 의지해 주시는 시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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