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54대 경명왕의 여덟 아들 중 두번째로 분봉되신 박언창이 사벌대군에 봉해지고 사벌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문호가 열리게 되어 언창을 관조로 모시게 되었다. 사벌주가 고려초에는 상산으로, 조선조에는 상주로 개칭되면서 본관을 상주(상산)이라 하게 되었다.
신라말 당시 사벌주는 후백제와의 각축장이 되어 경명왕이 아들 언창을 사벌방어장으로 임명하자, 그는 군사를 강화하여 후백제 군사와 대항하였으나 신라의 국세가 급격히 쇠약해져 여러 지역이 함락되고 사벌주가 고립상태에 빠짐으로, 언창은 서기 918년(경명왕 2년) 자립으로 사벌국을 세워 10여 년간 고군분투 하던 중 서기 929년(경순왕 3년) 낙동강을 도하하여 급습해 온 후백제의 견훤 군사를 맞아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항전 13년, 재위 11년만에 패망하게 되었다.
그 후 많은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조에 참지정사, 좌의정, 대제학, 판서 등의 높은 벼슬길에 올라 명문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상주시 소재 사벌국왕릉은 지방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어 매년 능제를 행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상암공파, 판서공파, 예판공파, 정숙공파, 찬성공파, 판원사공파 6개파의 2만 5천여 후손들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 왕가후손으로서 명예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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