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복숭아꽃이 빨갛게 핍니다. 밭에 가보면 봉우리가 올라와 있어 꽃을 피는 시간도 영화관의 영화 프로처럼 개봉 박두(開封迫頭) 상태입니다. 아지랑이 올라오고 복사꽃 피는 산촌은 볼만합니다.
농부는 이때 정말 하기 하기 싫은 일을 합니다. 그 가여운 봉우리를 눈 찔 끈 감고 가느다란 줄기 위 부분에 있는 봉우리들을 떼어 냅니다. 줄기 위쪽의 봉숭아 열매는 관리가 어렵습니다. 미리 제거하고 나머지 것들에게 영양분을 주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 고된 작업은 무슨 심리로 할까요. 아무래도 복숭아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 때문에 이 힘든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봉건시대에는 경제적인 사고와 도덕적 배려가 조금은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경주 최부자 댁은 400년 동안 만석꾼의 재산을 지킨 집안으로 가훈을 보면 존경받을 만합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사실 경제적인 부와 타인으로부터의 존경은 서로 양립되기 어려운 관계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로지 경제적 부에 집중합니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국부론(國富論)에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저녁에 편안하게 집에서 고기나 술을 먹게 된 것은 양조장 주인이나 빵 가게 주인이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기애(自己愛) 이기심에 호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