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뿌리] 무(武)로써 가문을 일으킨 여양진씨(驪陽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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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뿌리] 무(武)로써 가문을 일으킨 여양진씨(驪陽陳氏)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3.04.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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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조형물은 전체적인 형상으로는 여양을 봉으로 받은 시조 진총후 장군의 기상을 의미하고자 하였으며, 상단에는 고흥석을 사용하여 대관고작의 관모를 표현했다.새싹이 잎을 키워 꾸준히 성장해가는 이미지로, 이는 여양진씨의 다섯 개파를 상징하고 문중의 번영을 의미한다.중심부 대나무의 형상으로 문중의 청렴함과 강직함을 나타내고자 하였고, 여양진씨의 위상과 업적을 기리고 본받아 가문의 영광을 후대에도 자자손손 뻗어 나아가고자 함이다.
본 조형물은 전체적인 형상으로는 여양을 봉으로 받은 시조 진총후 장군의 기상을 의미하고자 하였으며, 상단에는 고흥석을 사용하여 대관고작의 관모를 표현했다. 새싹이 잎을 키워 꾸준히 성장해가는 이미지로, 이는 여양진씨의 다섯개 파를 상징하고 문중의 번영을 의미한다. 중심부 대나무의 형상으로 문중의 청렴함과 강직함을 나타내고자 하였고, 여양진씨의 위상과 업적을 기리고 본받아 가문의 영광을 후대에도 자자손손 뻗어 나아가고자 함이다.

여양진씨(驪陽陳氏)의 연원은 중국 북송 휘종 때 복주인 항(抗)의 46세손인 진수(陣琇)가 고려에 건너와서 여양현 덕양산 아래 정착세거했다고 전한다.

그 후손인 총후(寵厚)가 고려 예종(106-1122)때 상장군 겸 신호위대장군에 이르고, 인종 4년(1126) 이자겸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져 사성(賜姓)을 받음으로 이분을 시조로 모시고, 관향을 여양(驪陽)으로 삼았다. 여양은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이다.

2세 준(俊)은 고려 명종때 참지정사금자광록대부 등 문무관을 역임했으며, 무신 정중부의 무신의 난 때 문신을 구출한 공이 있으며, 3세 광순(光純)은 대장군, 광수(光脩)는 병부상서, 광경(光卿), 광의(光儀)는 대장군, 광현(光賢)은 추밀원부사를 역임했다. 4세 담(湛)이 시중공(侍中公), 식(湜)이 어사공(御史公), 온(溫)이 예빈경(禮賓卿), 화(澕)가 매호공(梅湖公), 택(澤)이 전농공(典農公)으로, 이들이 상계오파조(上系五派祖)이다.

현재는 하계47파(下系四十七派) 약 45만여명의 후손 중에서 국무총리 등 인재가 배출되고 있으며, 시조공의 토적(討賊)한 대의정신(大義精神), 참정공(參政公)이 활인(活人)한 성인정신(成仁精神), 종족의 화합을 위한 존친정신(尊親精神), 후손의 도리를 위한 경승정신(敬承情神)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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