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양진씨(驪陽陳氏)의 연원은 중국 북송 휘종 때 복주인 항(抗)의 46세손인 진수(陣琇)가 고려에 건너와서 여양현 덕양산 아래 정착세거했다고 전한다.
그 후손인 총후(寵厚)가 고려 예종(106-1122)때 상장군 겸 신호위대장군에 이르고, 인종 4년(1126) 이자겸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져 사성(賜姓)을 받음으로 이분을 시조로 모시고, 관향을 여양(驪陽)으로 삼았다. 여양은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이다.
2세 준(俊)은 고려 명종때 참지정사금자광록대부 등 문무관을 역임했으며, 무신 정중부의 무신의 난 때 문신을 구출한 공이 있으며, 3세 광순(光純)은 대장군, 광수(光脩)는 병부상서, 광경(光卿), 광의(光儀)는 대장군, 광현(光賢)은 추밀원부사를 역임했다. 4세 담(湛)이 시중공(侍中公), 식(湜)이 어사공(御史公), 온(溫)이 예빈경(禮賓卿), 화(澕)가 매호공(梅湖公), 택(澤)이 전농공(典農公)으로, 이들이 상계오파조(上系五派祖)이다.
현재는 하계47파(下系四十七派) 약 45만여명의 후손 중에서 국무총리 등 인재가 배출되고 있으며, 시조공의 토적(討賊)한 대의정신(大義精神), 참정공(參政公)이 활인(活人)한 성인정신(成仁精神), 종족의 화합을 위한 존친정신(尊親精神), 후손의 도리를 위한 경승정신(敬承情神)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