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뿌리] 정(鄭)나라 왕족의 후손 '서산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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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뿌리] 정(鄭)나라 왕족의 후손 '서산정씨'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3.05.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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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서산정씨 문중의 호국충절과 문·무를 겸비한 빛나는 업적을 상징하여 서산정씨 문중의 화합과 무궁한 번영을 염원하였다. 상단에는 정나라 환공의 왕관을 표상화 하였으며, 4개의 빛은(부정공, 부원군, 참의공, 사정공) 파를 표현했으며 그림은 강남제일가의 패방문(牌坊門)이고 기둥의 정씨가보는 범중엄(睦州守), 충효전가는 주자(晦翁)의 친필이다.
본 작품은 서산정씨 문중의 호국충절과 문·무를 겸비한 빛나는 업적을 상징하여 서산정씨 문중의 화합과 무궁한 번영을 염원하였다.
상단에는 정나라 환공의 왕관을 표상화 하였으며, 4개의 빛은(부정공, 부원군, 참의공, 사정공) 파를 표현했으며 그림은 강남제일가의 패방문(牌坊門)이고 기둥의 정씨가보는 범중엄(睦州守), 충효전가는 주자(晦翁)의 친필이다.

서산정씨는 정(鄭)나라(기원전 806~375년) 왕족의 후손이다.

정나라 시조 환공(桓公)의 64세 회(淮)공이 중국절강성 포강현으로 이주 15대를 한울타리 안에서 동거하여 강남제일가를 이루고 69세 형부원외랑 신보(臣保)공은 남송이 망할 무렵 서산 간월도로 망명(1237년)하여 인주수(麟州守)를 역임, 증 문하시랑평장사로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으로 전파하였다.

그의 아들 양렬공 인경(襄烈公 仁卿)은 서산정씨의 시조로 1256년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우고, 충렬왕이 세자때 시종하였으며 1269년 기사년의 난을 평정 원종을 복위시킨 공으로 1등 공신이 되었다. 또한 원나라 황제로부터 무덕장군 정동성 이문관(武德將軍 征東省 理問官)에 임명되고 탁월한 외교로 동녕부와 유민을 되돌려 받았다. 그 공으로 서북면도지휘사에 특진되어 상장군, 찬성사를 거쳐 서산군(瑞山君)에 봉해지니 이때부터 서산정씨(瑞山鄭氏)가 되었고 폐군되었던 부성현이 서산군(瑞山郡)으로 승격복군되었다. 1305년 벽상삼한삼중대광 추성정책 안사공신 도첨의중찬(壁上三韓三重大匡 推誠定策 安社功臣 都僉議中贊) 벼슬과 별세 후 양렬공(襄烈公) 시호를 받았다.

후손 내암 정인홍(鄭仁弘)은 임진왜란 때 영남 의병대장으로 활약했으며 대사헌으로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전후 복구사업에 치중하였다.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상소를 올리고 합천에 퇴거 후진양성에 힘쓰니 세칭 산림정승이다. 인조반정 때(1623년) 억울한 누명을 썼으나 1908년 신원복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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