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춘계(椿桂)
중시조 : 희백(希伯)
원주이씨의 원조(元祖)는 중국 절서 지역에서 진란(秦亂)을 피해 고조선에 들어왔다. 신라 흘해왕 때 이찬을 지낸 진민(眞民)공이 원시조이고, 공의 27세손 도균(道均)공의 차남 춘계(椿桂)공이 시조이다.
춘계공은 고려 17대 인종과 18대 의종 때 병부상서 평장사 안일호장을 지냈다. 중시조인 8세 희백(希伯)공은 남부부령을 지냈고, 9세 녹규(祿圭)공은 판위위시사로 원주를 중심으로 중흥 번영했다.
녹규공은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임(琳)공이 봉어동정으로 동정공파시조, 셋째 침(琛)공이 강원 병마절도사로 병사공파시조이다. 차남 인(璘)공이 중정대부 종부시령을, 인공의 아들 방진(邦珍)공이 재령현령으로 형제를 두어 장남 완(玩)공이 주부공파시조, 차남 거(?)공이 온사공, 차남 추(趨)공이 교도공, 삼남 월(越)공이 사용공, 사남 부(赴)공이 사직공, 오남 필(?)공이 갈촌공, 육남 진(?)공이 평천공파 시조이며, 총 일원(一源) 구파(九派)를 이룬다.
원주이씨의 선조들은 고려의 충신이었다. 특히 10세 인(璘)공은 두문동 72현의 한 분으로 개성 모현사(慕賢祠) 항절반에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시에는 국난극복에 공헌하여 정공신 원종공신 등 많은 공신을 배출했다. 부원군 응순, 응인 형제장군은 임란공신이었고, 그 외 문무과 장원자 분공, 정규공을 배출했으며 5대 봉군(封君)과 병자호란 때 세자를 모신 대수장군 등 큰 공을 세운 선조들도 가문의 자랑이다. 영남에서 500여 제자를 기르신 눌은 광정(光庭)공은 영조 때 영남의 대학자로서 봉화 송록서원에 봉안되었다.
근세에 재헌 국회의원 재학(在鶴)공과 형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박사, 대학장, 군장성, 기업인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한 문중이다.
원주이씨 후손들은 한 핏줄로 선조들의 얼과 유훈을 받들어 자손만대 화목과 번영으로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문중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