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의 도시조는 황락(黃洛)이다.
후한의 유신으로 신라 유리왕 5년인 서기 28년에 지금의 베트남(교지국)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경북 울진군 평해 월송록에 표착하여 그곳에 정착 세거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뿌리가 되었다.
황락의 후손인 회덕황씨는 대전의 토성으로, 고려 때 호부전서를 지내고 좌명공신에 녹훈된 회천군(懷川君) 황윤보(黃允寶)가 정치적인 혼란기를 피해 말년 회덕에 낙향 거주하면서 회덕을 본관으로 하는 회덕황씨 1세조가 되었다.
병부전서를 지낸 2세 연기(衍記)는 1332년 (고려 충혜왕) 폐원이 된 미륵원을 사비를 들여 중수하여, 1352년(공민왕)까지 20년동안 서울과 영호남을 왕래하며 묵어가던 행려객들에게 사계절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풍우를 막아주는 등, 구호와 봉사활동을 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아들 4형제에게 이 사업을 계승토록 유언을 하고 서거하니 황씨 부자형제 및 손자대까지 100년 이상을 이어지게 하였다.
회덕황씨 선조의 미륵원 봉사는 이색(李穡)의 남루기(南樓記)와 하륜(河崙)등 조선초의 명사 20인이 지은 남루제영(南樓題詠)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의 대상이 되어, 회덕의 후덕한 인심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충청도가 양반 소리를 듣는 원초적인 효시로서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 봉사의 귀감이 되었으며, 후덕한 인심은 충청도의 향풍이 되었다.
미륵원 운영의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미륵원지를 2005년 대전시에서 지방문화재 41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