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옥씨의 시조 옥진서(玉眞瑞)는 당나라 사람으로, 서기 635년 사학(四學)의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수의 임무를 띠고 고구려에 파견되어온 정관8학사의 한 명이다.
그 후 고구려와 신라 조에서 국학교수를 역임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는데 시서예약.충효제가(詩書禮樂.忠孝齊家)의 도(道)를 펼쳐 그 덕화(德化/덕행의 가르침)가 널리 미쳤다. 나라에서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의춘군(宜春君/의춘은 의령의 옛 지명)에 봉하고, 이후 문혜(文惠)의 시호를 내려 우리나라 옥 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로써 의령(宜寧)은 옥 씨의 본관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계보 기록의 실전으로 지금의 계보는 호적상 확인된 바 고려 명종 원년에 태어나 창정의 벼슬을 한 은종(恩宗)을 중시조로 하고 있으며, 이후 8세조에 이르러 별시위공파·감사공파·학생공파·교리공파·학사공파·평장사공파의 6개 종파로 나뉘어졌다.
처음 영남을 중심으로 살아오던 후손들은 차츰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도 옮겨 살았으며 오랜 세월과 함께 지금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