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왕을 박씨의 시조로 하여 제54대 경명왕의 제8왕자인 월성대군 박언의(朴彦儀)를 월성박씨(月城朴氏)의 분관조로 한다.
경주 남산(금오산) 서쪽 기슭에 제단을 설단하고 고려 때 좌사간을 지낸 31세(世) 박견(朴?) 및 지하(支下) 10위의 제단도 좌측에 병설하였으며 그 아래 월성재(月城齋) 재실을 두고 매년 음력 3월 15일 대군과 11위 선조의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중조(中祖) 42세 박구(朴龜)는 중군의 사정과 부령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인천 장아산에 은거 중 태종의 출사권유에도 불응하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으며 그 묘소는 장아산 종중 묘역(인천광역시 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62호)에 있다.
43세 박간(朴幹)은 성균관 대사성과 예문관의 제학을 지내고 가선대부로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실전되어 종중묘역내 선고의 조하(兆下)에 설단되었으며 매년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제향하고 있고 인천시 서창동에 장아재(藏我齋)를 두고 있다.
전국의 3만여 종친은 인천 서산 동래 군위 경주 등지에서 숭조정신을 바탕으로 왕손의 긍지를 갖고 치성을 다하며 종족간에 종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