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신라 경명왕의 후손 '월성 박씨'
상태바
[가문의 뿌리] 신라 경명왕의 후손 '월성 박씨'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3.12.15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탕의 형태는 알의 형상을 디자인 하였으며, 맨 위의 솟아 있는 부분은 조형적으로 전체적인 조각상이 힘있고,기상이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표현이며, 그 아래 투각한 원의 형태는 나정을 뜻하며, 그 안에 있는 붉은 구(球)는월성을 뜻하는 달을 의미한다.달의 표현은 붉은 색상의 돌을 연마하여 광채가 나도록 하였고, 좌측의 비상하는 말은 월성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탄생설화의 백말을 의미하며, 우측의 비천상은 아주 먼 하늘로부터 날아온 성모(파소)가 신선이 되어내려 온 모습을나타내었다. 비천상과 백말의 표현방식은 고부조의 양각으로 표현하였고 그 아래의 오석으로 된 월성박씨의유래문은 연마한 오석에 음각으로 글을 새겼으며, 맨 아래의 기단석 2단과 사각 좌대는 통석으로 시공하여 오랜세월영구히 견딜 수 있도록 하였다.
바탕의 형태는 알의 형상을 디자인 하였으며, 맨 위의 솟아 있는 부분은 조형적으로 전체적인 조각상이 힘있고,기상이 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표현이며, 그 아래 투각한 원의 형태는 나정을 뜻하며, 그 안에 있는 붉은 구(球)는월성을 뜻하는 달을 의미한다. 달의 표현은 붉은 색상의 돌을 연마하여 광채가 나도록 하였고, 좌측의 비상하는 말은 월성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탄생설화의 백말을 의미하며, 우측의 비천상은 아주 먼 하늘로부터 날아온 성모(파소)가 신선이 되어내려 온 모습을나타내었다. 비천상과 백말의 표현방식은 고부조의 양각으로 표현하였고 그 아래의 오석으로 된 월성박씨의유래문은 연마한 오석에 음각으로 글을 새겼으며, 맨 아래의 기단석 2단과 사각 좌대는 통석으로 시공하여 오랜세월영구히 견딜 수 있도록 하였다.

월성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왕을 박씨의 시조로 하여 제54대 경명왕의 제8왕자인 월성대군 박언의(朴彦儀)를 월성박씨(月城朴氏)의 분관조로 한다.

경주 남산(금오산) 서쪽 기슭에 제단을 설단하고 고려 때 좌사간을 지낸 31세(世) 박견(朴?) 및 지하(支下) 10위의 제단도 좌측에 병설하였으며 그 아래 월성재(月城齋) 재실을 두고 매년 음력 3월 15일 대군과 11위 선조의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중조(中祖) 42세 박구(朴龜)는 중군의 사정과 부령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인천 장아산에 은거 중 태종의 출사권유에도 불응하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으며 그 묘소는 장아산 종중 묘역(인천광역시 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62호)에 있다.

43세 박간(朴幹)은 성균관 대사성과 예문관의 제학을 지내고 가선대부로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실전되어 종중묘역내 선고의 조하(兆下)에 설단되었으며 매년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제향하고 있고 인천시 서창동에 장아재(藏我齋)를 두고 있다.

전국의 3만여 종친은 인천 서산 동래 군위 경주 등지에서 숭조정신을 바탕으로 왕손의 긍지를 갖고 치성을 다하며 종족간에 종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