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이씨는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를 거쳐 부평부로 개칭된 계양산 일대에 본거지를 두고 옛 수안, 동성, 통진, 김포 등 네 개의 현을 통치한 호족 군장인 이희목(李希穆)이 시조다.
태조 왕건의 고려왕조 창업에 적극 협조한 공으로 태조는 공을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에 책봉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충민공의 증손인 문충공(文忠公) 이정공(李靖恭)과 현손인 장숙공(莊肅公) 이위(李瑋) 부자가 이어서 문하시중을 지내고 현손인 이숙(李璹)과 이순(李珣) 두 형제가 참지정사와 문하평장사를 지내면서 고려시대 문벌귀족가문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서는 6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시고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된 충숙공(忠肅公) 이세화(李世華)를 비롯하여, 도승지와 대사헌을 지내시고 공조, 형조, 호조, 예서의 판서를 역임한 효정공(孝貞公) 이정제(李廷濟), 병조, 형조, 예조의 판서와 한성판윤을 지낸 충희공(忠僖公) 이익원(李翼元) 등 문중을 더욱 빛나게 한 선조들의 유업이 있어, 그 후손들이 문중의 종훈인 충효청겸(忠孝淸謙)의 정신을 대대로 면면히 계승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문충공이 부평백(富平伯)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부평으로 삼았는데, 940년 지방제도를 개혁할 때 장제군(長堤郡)이 수주(樹州)로 승격되어 개경 근교의 웅읍(雄邑)이 되면서 부평이씨가 고려 초에 수주이씨(樹州李氏)가 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