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6명이 효자정려를 받은 '영해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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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6명이 효자정려를 받은 '영해 이씨'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4.0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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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이씨는 6분의 효자정려를 받은 가문으로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신 선조들과 현대의 반공소년 이승복군의 기개를 세 개의 곡선적 직선의 주 조형물로 상징하고, 중앙의 브론즈 조형물은 만개한 꽃을 표현하여 효자의 귀감이 되는 영해이씨 가문의 발전과 번영을 담고자 하였다.
영해이씨는 6명이 효자정려를 받은 가문으로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신 선조들과 현대의 반공소년 이승복군의 기개를 세 개의 곡선적 직선의 주 조형물로 상징하고, 중앙의 브론즈 조형물은 만개한 꽃을 표현하여 효자의 귀감이 되는 영해이씨 가문의 발전과 번영을 담고자 하였다.

영해이씨는 시조가 연동(延東)이며 고려 후기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영해군에 훈봉되었다. 신라의 사도 이입전(李入全)의 후예로 전해지며 완산에서 이적하여 시조의 군호(君號)인 영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2세 선(宣)은 별장동정을, 3세 을년(乙年)은 공민왕 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현대부내부령을, 4세 장밀(長密)은 고려 말 호부전서를 지냈고 조선개국에 불응하여 강릉(江陵)으로 은둔하였다. 그 아들 성무(成茂), 선무(善茂), 춘무(春茂), 양무(良茂) 4형제는 효성이 극진하여 한겨울 얼음속의 잉어를 구하여 어머니를 구병한 효행으로 태종 17년에 4형제가 효자정려를 받고 세종의 명으로 편찬한 삼강행실도에 실려 만백성의 사표가 되었다. 14세 당(堂), 민(敏) 형제 또한 죽음으로써 부모를 섬긴 효행으로 숙종 32년에 정려를 받아 『영해이씨2세6효』의 졍려각이 강릉시 교동에 세워졌다. 이 고을이 예향(禮鄕)이라 불리게 된 것은 영해이씨의 이런 효행이 그 근원이 되었다.

10세 오(?)는 선조 33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교리와 태안군수를, 아들 상혐(尙?)과 상빈(尙?) 형제는 광해군 7년에 형제 동방급제는 물론 아우는 장원이었다. 이들 3부자의 문명(文名)은 중국의 蘇老泉과 비견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옛날에는 충신, 효자, 열녀, 현대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반공 소년 이승복(李承福)군도 영해인이다.

영해이씨는 6개종파로 나뉜다. 주부공파(11세 尙馥) 감찰공파(11세 尙馝) 동명공파(10세 ?) 강서공파(11세 尙?) 진사공파(11세 尙?) 여주파(4세 長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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