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충효와 청백을 근본으로 한 '칠원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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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충효와 청백을 근본으로 한 '칠원 윤씨'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4.01.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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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한글 윤자와 칠원윤씨 마크를 착안하여 디자인 하였다.한글 윤(尹)자에 큰 원형은 시조공에서 비롯한 일체성을, 여섯점은 6개파의 융화단결을,전체적으로 받들어 모시는 형은 숭조위선의 정신을 나타내고전체적인 모습으로는 조상을 높이 받들고 종친의 발전을 바라는 모습으로 이는 칠원윤씨 가문의 랜드마크가 되기를바란다. 본 조형물의 거센 파도의 형상은 선조들의 업적과 후손들의 미래로의 번영을 이룩하고자 한다.
작품은 한글 윤자와 칠원윤씨 마크를 착안하여 디자인 하였다. 한글 윤(尹)자에 큰 원형은 시조공에서 비롯한 일체성을, 여섯점은 6개파의 융화단결을,전체적으로 받들어 모시는 형은 숭조위선의 정신을 나타내고전체적인 모습으로는 조상을 높이 받들고 종친의 발전을 바라는 모습으로 이는 칠원윤씨 가문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바란다. 본 조형물의 거센 파도의 형상은 선조들의 업적과 후손들의 미래로의 번영을 이룩하고자 한다.

칠원윤씨 시조는 신라 태자태사와 고명원로를 지낸 태사공 시영(始榮)이다.

아들 판태사국사공 황(璜) 이후 고려초 보윤호장 칠제백을 지낸 거부(鉅富)가 중시조이고, 충의공 길보(吉甫)는 찬성사 수성직량공신 구성군에 봉해졌으며 슬하에 오형제가 칠원윤씨 오방파(五房派)의 파조인 충효공 환(桓) 대언공 자(?), 칠성군 장(樟), 사윤공 화(樺), 부원군 공(?)이며 후손들이 칠원에 정착 세거하면서 칠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충효공 환(桓)은 고려조에서 다섯 임금을 모시고 세 번 문하시중을 역임하였으며 익찬공신 칠원부원군 칠원백에 봉해졌다. 조선 태종조 정경공 방저(邦抵)와 정평공 자당(子當)은 제2왕자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좌명공신 우찬성 및 좌찬성 벼슬을 제수 받고 칠원군과 칠원부원군에 각각 봉해졌다. 양성당공 지(志)는 세종조의 집현전 학사로 치평요람(治平要覽)을 편찬하였으며 대사간에 제수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지퇴당공 석보(碩輔)도 직제학 벼슬과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송월암공 풍형(豊亨)은 한림학사 부제학 강원도 관찰사 대사간을 지냈다.

헌민공 탁연(卓然)은 문신정시(文臣庭試)에서 장원을 하고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칠계군에 봉해지고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함흥 창의사에 배향되었다. 임진왜란에 전공 등으로 칠계군 탁연(卓然), 다계공 승보(承輔), 다헌공 개보(?輔), 돈암공 영상(榮祥), 송제공 흥량(興良) 절충장군공 옥(沃), 만호공 발(潑)을 위시하여 23명이 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충장공 경원(慶元)은 임진왜란 때 삭녕전투에서 순국한 공으로 칠평군에 봉해졌고 충신정려문이 세워졌으며 연천 표절사에 배향되었다. 직암공 사국(師國)은 공조판서와 판돈령부사를 역임하였고 동래부사 재임시 시조 묘역을 정화하고 서원을 지어 후손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충효와 청백을 가문의 근본으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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