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충과 의와 효행의 전통이 빛나는 '무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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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충과 의와 효행의 전통이 빛나는 '무주 김씨'
  • 양민규 기자
  • 승인 2024.0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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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무주김씨의 시조 김성이 무주백에 봉해짐에 본관이 무주가 된 것을 착안하여,무주 덕유산의 높고 험한 기상과 문중의 번영과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음과 양, 남과 여, 인간존중의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에는 유래문 판을 책의 형상을 두어 문과장원급제에 대한 표현을 하였다.하부에는 계단 3단을 두어 조상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 경건함을 갖게 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무주김씨의 시조 김성이 무주백에 봉해짐에 본관이 무주가 된 것을 착안하여,무주 덕유산의 높고 험한 기상과 문중의 번영과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음과 양, 남과 여, 인간존중의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에는 유래문 판을 책의 형상을 두어 문과장원급제에 대한 표현을 하였다. 하부에는 계단 3단을 두어 조상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 경건함을 갖게 하고자 했다.

무주김씨(茂朱金氏)는 조선초기 고관의 씨족으로 충(忠)과 의(義)와 효행(孝行)의 전통이 빛나는 학자의 가문이다.

중시조 성(晟)은 고려 말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국자감 제주를 역임하였으며, 조선이 개국한 후 벼슬이 보문각 대제학에 오르고 태종 대왕으로부터 무주백(茂朱伯)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무주를 본관으로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세 생려(生麗)는 부제학에 올랐으며, 3세 규(葵)는 세종조에 예조판서를 거쳐 홍문관 대제학으로 대광원윤(大匡元允-크게 바르고 올바름의 으뜸)이란 칭예를 얻었다. 선지(善之)는 집현전 교리로 18학사와 함께 종사하며 문종으로부터 어린 단종의 뒷일을 부탁 받은 고명대신으로서, 후일 사육신 등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병자사건에 연루되어 감(堪), 선지(善之), 한지(韓之), 유인(有仁)이 함께 참형을 당하는 멸문의 화를 입었다. 이로 인하여 가족들은 고향인 수원 북쪽 청룡산 아래 벽계동에서 화를 피하여 충청도 내포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12세 석여(錫汝)는 충청지방의 저명한 성리학자로 존경을 받았고, 14세 광찬(光纘)은 효행으로 정조대왕으로부터 효자집안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받았으며, 19세 사구(思九)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로 이름을 날리는 등 대대로 충절과 의리, 효행을 실천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가문의 전통과 명예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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